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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史:)고려시대

인물열전:) 공주절도사 김은부(+고려거란전쟁, 딸, 안산, 현종, 형부시랑, 죽음)

by 알풀레드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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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부

 

1. 생애

 

김은부는 수주(지금의 경기도 수원시) 안산현(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사람으로 성품이 근검하였다. 성종 때 견관승을 지냈고, 목종 때 어주사를 거쳐 현종 초에 고려 공주절도사(절도사체제 하의 지방장관)가 되었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남행하다가 공주에 머물게 되자 김은부가 예를 갖추어 교외에서 맞이하였다. 당시 김은부는

 

"성상께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온갖 고생을 겪으시며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실 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라고 위로하고 의대와 토산물을 올렸다고 합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피난길에 올랐던 현종 일행은 잠시나마 꿀맛 같은 휴식을 하게 되죠. 

 

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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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공주에서 휴식을 취한 현종은 파산역(巴山驛)으로 향합니다. 파산역의 역리들은 난을 피해 모두 도망간 상황이었고, 수라간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김은부는 다시 음식을 올리며 아침 저녁으로 정성껏 받들었습니다. 거란군이 퇴각한 후 현종은 상경 길에 다시 공주에 유숙하게 되었는데, 김은부는 맏딸을 시켜서 어의를 지어서 올리게 합니다. 이로 인해 현종은 김은부의 공을 기려 그의 세 딸을 모두 왕비로 맞이하게 되는데, 이들이 원성왕후, 원혜왕후, 원평왕후입니다. 

 

고려거란전쟁

 

1011년 현종은 공주절도사 김은부를 중앙으로 불러들인 후 형부시랑(법률, 사송, 형옥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형부에 소속된 정4품 관직)으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거란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고 돌아오다가 내원성(지금의 압록강 검동도)에 당도했을 때 거란이 여진에게 알려 그를 잡아가게 한 결과 여진의 포로가 되어 상당한 고초를 겪게 되는데요. 몇 개월동안 고생을 하다가 겨우 귀환을 합니다. 1015년에는 지중추원사, 1016년에는 호부상서에 이어 중추사 상호군으로 임명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는데요. 

 

고려거란전쟁

 

2. 죽음

 

현종 8년(1017년)에 병으로 김은부는 세상을 떠납니다. 이에 왕후의 부친이라 하여 추충수절창국공신, 개부의동삼사, 수상공, 상주국, 안산현개국후를 추증하고, 식읍 1천 호를 주었으며, 그 처를 안산군대부인으로 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친을 상서좌복야, 상주국, 안산현개국후에 추봉하고 식읍 1천5백 호를 주었으며, 모친을 안산군대부인으로 추증하였는데요. 일개 절도사에서 고려 최고의 가문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죠. 현종 이후 고려의 왕은 원성왕후와 원혜왕후의 후손이 됩니다. 

 

고려거란전쟁

 

3. 평가

 

고려사 열전에서 김은부에 대한 평가는 성품이 근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주절도사로 있던 시기에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고려사회의 특성을 살펴보면 호장들의 입김으로 상당히 고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적당한 타협으로 지역을 다스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대 각종 매체들은 김은부가 현종에게 의도적으로 딸을 시집보낸 야심가로 그려내기도 하죠. 결과론적으로 세 딸이 모두 현종의 왕후가 되었고, 고려의 왕들이 모두 그의 후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록의 부재로 야심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에 대한 충성심은 진실했던 것 같습니다. 

 

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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