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이 조선의 제3대 국왕에 오르기 전 수많은 장수들과 동거동락하면서 위기를 극복해왔다. 그중 이방원의 가장 든든한 힘이 되어 준 인물은 바로 원경왕후 민 씨로 그녀의 내조가 없었다면 결코 왕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비단 그녀 개인의 내조를 떠나 여흥 민 씨 집안의 지지를 받았기에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장인인 여흥부원군 민제는 정신적으로 이방원이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의 아들인 민무구와 민무질은 이방원의 심복이 되어 큰 활약을 하였다. 특히, 정몽주를 척살할 당시 이방원은 민무구, 민무질 형제와 모의하였으며, 거사가 성공한 후 꾸준히 이방원을 도왔다.
1398년 민무구는 대장군, 민무질은 호조의랑에 임명되었고,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 이숙번을 천거하기도 했다. 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하자 민무구는 여강군, 민무질은 여성군에 봉해졌다. 1400년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역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주요 요직을 겸하게 되면서 군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때부터 태종 이방원은 외척을 경계하기 시작하는데, 1406년 8월 태종은 세자 양녕에게 선위할 뜻을 표명했다.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 과정이 잘 표현되었다. 의안대군(이화)는 '민무구, 민무질은 외척이 되어 지나치게 교만하고 방자하다'라고 탄핵을 당했다.
한 일화에서 태종이 민무구에게 '임금에게 아들이 하나만 있어야 하냐'고 묻자, 민무구는 '그렇습니다. 세자 외 영특한 아들이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후계자들이 분쟁을 일으킬 것에 대해 영특한 세자 한 명만 있는 것이 낫다 정도로 이해가 되지만 다른 세자들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비쳤다고 한다.
또한, 태종이 선위한다는 뜻을 내비칠 때 양녕대군을 찾아가 불만을 토로한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민무질과 함께 국문을 받고 황해도 연안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지속적으로 올라가자 민제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먼 곳으로 유배할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태종은 후계자 세종이 안정적인 왕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 외척을 제거하는데 힘을 쓴다. 민무구 민무질 형제 그리고 민무휼, 민무회 형제까지도 사사하게 되니 민 씨 집안은 그야말로 폭삭 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원경왕후 민 씨와의 불화가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종의 장인인 심온 역시 외척 숙청 작업으로 역도에 몰려 사망한 것으로 보아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만약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아버지 민제와 같이 권력에 초탈한 모습을 보이고 처세에 능했다면 태종의 숙청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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