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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사성어

두문불출 뜻과 유래, 한자풀이

by 알풀레드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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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두문불출이라는 고사성어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한자 풀이를 해보면 아래의 내용과 같다. 

 

杜(막을 두), 門(문 문), 不(아니 불), 出(날 출)

 

'문을 막고 나가지 않는다'라고 직역이 되는 고사성어이다. 과연 어떤 이야기에서 유래된 용어일까? 우선, 두문불출은 춘추전국시대 변법을 통해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상앙과 선비 조량의 논쟁에서 알려졌다. 상앙은 변법으로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너무 가혹하게 정치를 하다 보니 정적이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진효공의 태자가 법을 어기자 태자의 훈육관이었던 공자 건의 코를 베었다.   

 

출처. 대진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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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량은 "공자건이 8년이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公子虔杜門不出已八年矣)"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공자 건에게 중형을 가한 상앙이 천수를 누리기 힘들 것이라고 엄중한 경고를 한 것이다. 훗날 실제로 상앙은 진혜문왕과 공자 건에 의해 거열형으로 비참하게 죽었다. 이러한 일화가 사마천 사기의 상군 열전에 실려 있다. 

 

출처. 대진제국

또한, 사마상여열전에도 두문불출이 실려 있다. 중국 전한 시대 문인인 사마상여에게 반한 탁문군(거상 탁왕손의 딸) 사랑의 피를 하여 술장수를 하며 고생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아버지 탁왕손은 부끄러워 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卓王孫聞而恥之 爲杜門不出). 다행이 엔딩은 친구를 통해 이들의 사랑을 인정하고 두 사람을 받아들였다. 

 

출처. 중국인물사전 이미지

 

위의 두 가지 일화가 두문불출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용어는 조선시대에도 사용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나라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수많은 인재들을 채용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고려의 유생들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각오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두문동에 거주하며 속세와 연을 끊고 살았다고 한다. 

 

출처. 태종 이방원

 

이성계는 자신의 명을 거역한 유생들을 괘씸하다고 여겨 이들에게 벼슬길에 들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두문동에 모인 72명은 결코 협박에 굴하지 않았고, 이성계는 혼내줄 생각으로 불을 질렀다. 그런데 72명의 유생들은 불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이성계는 개경에서 나라를 다스리기 힘들겠다고 생각하여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두문동 유생들의 일화는 두문동실기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두문불출의 유래가 되었다. 

 

물론 두문동실기 작성된 이야기는 정사가 아닌 사실을 기반으로 한 야사이다. 

 

두문불출의 고사성어는 현재 코로나19 시대에 외출을 꺼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출처. 용의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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