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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타

안시성 전투의 영웅 양만춘

by 알풀레드 202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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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년 11월 당나라 대군이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북경으로 모였다. 당나라 황제 태종 이세민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정벌하기로 결정하고, 이세적과 장량을 각각 육군과 수군을 지휘하도록 했다. 또한, 당나라 주요 관리들(당의 6부 상서 중 4개 상서)과 핵심 무장들이 총출동하였다. 당 태종이 이끈 정예군은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 등을 함락하고, 주필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에 따라 고구려의 장수 고연수와 고혜진의 항복을 받아냈다. 주필산 전투의 패배는 그야말로 고구려는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과 백성들이 일치단결하여 당 태종의 군대를 막아냈다. 

 

출처. 영화 안시성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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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시성 전투의 배경 

당나라 개국 전 수나라는 막대한 군사와 물자를 투자하여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당대 최고의 제국을 건설한 수 문제(1대 황제)와 양제(2대 황제)는 주변국들을 차례로 복속시키며 조공을 강요하였는데, 고구려는 조공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수나라는 고구려의 영웅 을지문덕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장수들의 노력으로 처참하게 패배하고, 내부적으로 반란이 일어나 결국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수나라에 이어 등장한 당나라는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맺었으나 호시탐탐 침략할 계획을 세웠다. 당 태종이 집권하던 시기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기회를 노리던 당나라는 즉시 연개소문의 정변을 규탄하고 고구려 침공을 결정한다. 

 

출처. 영화 안시성

 

당 태종이 고구려의 정벌을 결심하고 장수들과 논의할 때 장손무기 등은 반대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국력을 가졌던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국력을 소비하여, 1세기 만에 멸망당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이다. 당 태종이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연개소문은 당나라의 우방국인 신라를 공격하였고, 당나라의 영주를 선제공격하는 등 도발을 감행하였다. 당시 당 태종은 후계자 책봉 문제로 정치적인 위기를 맞고 있었는데, 고구려 정벌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였다. 또한, 우방국이 도움을 요청한 것을 대국 입장에서 무시한다면 주변국의 신의를 잃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 침공을 시작한 것이다. 

 

출처. 영화 안시성

 

■ 고구려 원정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을 위해 먼저 장안의 민심을 살폈다. 수나라 시절 고구려 원정으로 민심이 떠났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11월 형부 상서 장량을 평양도 행군 대총관으로 임명하고, 남주 지역에서 징발한 수군 4만을 지휘토록 하였다. 병부 상서 이세적에게는 요동도 행군 대총관으로 임명하여 보병과 기병 6만을 지휘하도록 했다. 장량의 수군은 산둥반도에서 해로를 따라 평양으로 진군하였고, 이세적의 군대는 요동으로 진군했다. 당 태종은 645년 2월 낙양을 출발하여 6군을 거느리고 요동으로 향했다(구당서 기록). 이때 신라와 백제, 거란 등에게 고구려를 공격할 것을 요구했고, 신라는 군사 3만을 일으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의 공격을 받아 7개 성을 빼앗겼다.   

 

출처. 나무위키

 

당나라 군대의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구당서의 기록을 근거로 이세적이 이끌던 요동도행군 6만과 장량이 이끌던 평양도 행군 4만을 합쳐 10만의 병력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역사 학자들 사이에서는 당나라 군대가 30~50만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당나라 군대는 수나라를 무너뜨리고 전국의 군웅들과 자웅을 겨루었던 실전부대로 수나라 군대와 질적으로 틀렸다고 한다. 이세적이 이끄는 당나라 육군은 고구려 북쪽 성들을 공격했다.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이 당군에 의해 함락되었는데, 특히 요동성은 수양제의 백만 대군의 공격도 버틴 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2일 만에 함락되었다.

 

출처. 영화 안시성

 

당시 당나라는 발석차라는 신무기로 공격하자 성벽이 무너졌고, 남에서 강풍이 불기 시작하자 화공으로 요동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치열한 백병전이 이어졌으나 결국 패배하게 되었고, 수 만 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4개의 성을 함락시킨 당 태종은 안시성과 건안성 그리고 오골성을 두고 어느 곳을 공격할지 군사 회의를 진행했다. 안시성을 두고 건안성을 공격할 시 보급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이세적의 의견에 따라 안시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즉시 포위하였다.  

 

출처. 영화 안시성

 

■ 성주 양만춘과 안시성 전투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연개소문은 안시성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로 인해 안시성은 고구려에서 독립적인 세력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안시성 성주의 이름음 양만춘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성주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안시성주의 이름이 남아있지 않아 슬프게 여겼다고 한다. 즉 양만춘의 이름은 동춘당선생별집이라는 야사서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명나라 대의 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에서 등장한 이름을 가져온 것이다. 편의상 안시성주의 이름은 양만춘이라고 불릴 뿐이다. 

 

출처. 영화 안시성

 

당나라 군대가 요동성을 함락하고 안시성을 포위하자 초초해진 연개소문은 즉시 15만 명의 구원군을 안시성에 파견한다. 하지만 안시성 구원군은 당 태종의 유인전법에 걸려 대패하게 되고 안시성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다. 안시성은 고립무원의 상태로 당나라 대군을 맞이했으나, 당 태종의 깃발을 보고 북과 장구를 치면서 조롱했다. 이에 이세적이 당 태종에게 성이 함락되면 남자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자고 공언했다. 안시성 주민들은 오히려 결사항전을 결심하였다. 

 

출처. 영화 안시성

 

안시성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성으로 남만주철도의 해성역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인 안시성을 지키는 군사들 역시 백전 불굴의 용사들이었다. 당나라 군대는 총력을 다해 안시성을 공격하였으나 굳건히 버텼다. 

 

출처. 영화 안시성

 

예상외로 안시성이 함락되지 않자 강하왕 이도종을 책임자로 하여 흙으로 토산을 쌓았다. 문제는 이 토산이 전투 중 한 모퉁이가 무너졌는데, 안시성 병사들이 급습하여 토산을 탈취하였다. 약 50만 명이 동원되어 쌓았던 토산이 점령당하자 당 태종은 분노했다. 다시 토산을 되찾기 위해 맹공을 펼치지만 함락되지 않았고, 그 사이 겨울이 찾아왔다. 보급이 떨어지고 겨울로 인해 전투가 불가능해지자 결국 당 태종은 퇴각을 명령한다. 3개월 동안 당 태종의 공격을 버틴 안시성의 성주와 군사들은 대단하다는 표현밖에 할 말이 없다. 

 

출처. 영화 안시성

 

■ 안시성 전투의 결말

고구려 원정을 떠날 때 기세등등했던 당나라 군대는 거지꼴로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고구려의 입장에서 안시성이 버텨주었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겨울이 다가올 때 퇴각하는 당군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당 태종은 직접 자신의 수레를 밀면서 퇴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피해가 엄청났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구려와 당나라 전쟁의 결과는 한 민족의 전설로 남아 현재까지 전해져 자랑스럽게 여겨지고 있다. 

 

출처. 영화 안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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