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의 사병 혁파(+조영무, 이거이, 하륜, 이숙번)
1차 왕자의 난을 통해 정안군 이방원은 정도전 일파와 세자 이방석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그리고 정도전 일파가 국정을 어지럽혔다는 명분을 세워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정당성을 태조 이성계에게 보고한다. 당연히 태조 이성계는 분노하였으나 이미 조정을 장악한 정안군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고, 공석이 된 세자 자리에 영안군 이방과를 책봉하게 된다. 그리고 영안군 이방과는 조선 제2대 국왕에 오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회안대군 이방간이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킴에 따라 정안군의 입지는 더욱더 단단해지고 결국 그토록 바라던 세자 자리에 책봉된다.
정안군 이방원이 세자에 책봉된 후 공신들은 자신의 세상이 된 것처럼 권세를 얻게 되었다. 이방원은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신들이 가지고 있는 사병들은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사병을 혁파할 계획을 수립한다. 하지만 사병을 혁파하는 것은 새로운 분란을 일으킬만큼 위험한 정책이었다. 앞서 자신 역시 사병 혁파에 대항하여 정도전을 제거했기 때문에 사병을 가진 절제사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자신 역시 제거당할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방원이 정도전과 다른 점은 자신을 지지해줄 세력과 군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흥 민씨 가문은 정계와 군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숙번 역시 이런 정책을 추진할 때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을 가졌기에 태종 이방원이 믿을 수 있었다. 또한, 하륜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공신들이 태종 이방원을 따르도록 만들었다.
사병 혁파에 가장 반발했던 인물은 이거이와 조영무 등이 있다. 특히 이거이는 왕자의 난에 개입해 정사공신이 되었고, 태조의 적장녀인 경신공주와 결혼했으며, 자신의 아들 이백강은 태종의 적장녀인 정순공주와 결혼함에 따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병을 거느리고 있어 절대로 양보할 수 없었다. 조영무 역시 태조 이성계의 사병인 가별초를 이끌던 수장으로 정예병 중 정예병을 거느리고 있어 절대로 사병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비범한 군주로 자신이 선택한 길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유연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고, 한편으로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신하들을 눌러버렸다. 즉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한 것이다. 이거이와 조영무는 결국 유배를 떠나게 되고, 이거이는 복귀와 귀양을 거듭하다가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하지만 조영무는 잠깐의 분노로 태종 이방원의 뜻에 반발하였으나 빠른 처세술로 인해 잠깐의 유배 생활 후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사병이 혁파되면서 안정적인 군사 체계를 정비하게 되었고, 관제를 정비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였다. 이로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 세종이 치세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