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후(+신혜선, 철종, 강화도령)
조선 제25대 국왕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에 대해 살펴보자. 철인왕후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각종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종종 등장하였으나 대부분 잠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인지도는 떨어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 20년 12월 12일부터 21년 2월 14일까지 퓨전사극 코미디 '철인왕후'가 방영되면서 대중들에게 상당한 인지도를 얻게 된다. 물론 철인왕후라는 인물을 모티브로 한 가상의 인물이다.
조선 후기 세도 정치로 인해 인생이 파탄 나고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세도 정치란 소수의 가문(외척)이 권력을 독점한 정치 체계를 의미한다. 세도 정치로 인해 소수의 가문에 권력을 독점함에 따라 능력 있는 이들이 배척되고, 사회 지도층이 분열되는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된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을 배경으로 다양한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특히 이번 포스팅에서 알아볼 인물인 철인왕후는 강화도령이라고 불린 철종의 아내로 세도 정권의 핵심 인물인 영은부원군 김문근과 흥야부부인 민 씨의 딸로 정치적인 이유로 1851년 열다섯의 나이로 왕비에 간택되었다.
철인왕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어떤 인물이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다만, 탐욕스러운 인물로 알려진 아버지 김문근과 달리 말수가 적고 즐거움이나 성냄을 얼굴에 잘 나타내지 않는 등 부덕이 높은 것으로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즉, 가문의 이익을 위해 왕비가 되었으나 입궁 후 정치적인 개입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철인왕후에 대한 기록은 정사에 나서지 않았기에 칭송을 받았다는 내용과 철종이 사망한 후 고종 때에 대비가 되어 '명순'이라는 시호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녀는 1858년 철종과의 사이에서 원자를 낳았으나 급작스러운 열병으로 요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1878년 42세의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 승하했다.
철인왕후에 대한 기록이 매우 부실하기 때문에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상상을 할 수 밖에 없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신혜선 주연의 드라마 철인왕후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계기가가 된 것 같다. 신혜선 이전 방송에는 세도정치 시기를 설명하는데 잠깐 얼굴만 등장하는 역으로만 등장하였다. 또한, 고종이나 명성왕후에게 조언을 하는 정도로 등장하였기에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매우 떨어진다. 하지만 '신혜선 주연의 철인왕후'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상당한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 되었다.
조선의 제25대 임금인 철종은 국왕이 되기 전 강화도에서 나무꾼으로 보내던 시절 강화도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방계 출신인 강화도령은 국왕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으나 세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옹립된 인물이다. 세도 가문에 의해 허수아비 왕으로 전락하여 제대로 된 정치를 하지 못한 채 젊은 나이로 사망한 비극적인 인물이 바로 철종이다.
철종은 세도 정권에 의해 좌절을 경험하였는데,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아내가 된 철인왕후를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상당한 경계를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녀의 인품에 점차 마음이 풀어졌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어져 이런 철인왕후라는 드라마가 탄생하지 않았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