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이성계의 아들들과 군호, 가계도 알아보기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을 보는 시청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늘은 이성계의 아들들과 함께 그들의 군호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군호'는 상고시대 주나라의 봉건제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다.
주나라의 유교적 예법상으로 천자는 자신을 대신하여 지방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제후는 오등작에 따라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작위를 수여받았고, 제후국에 소속된 가신은 군호의 작위를 받았다. 군호를 받았던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은 전국사군자(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가 있다.
이러한 오등작과 군호는 고대 삼국시대부터 받아들여져 고려와 조선까지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군호는 왕의 적자에게 '대군'의 칭호를 내렸고, 왕의 서자나 손자 그리고 공신들에게는 '군'의 칭호를 내렸다. 조선 개국 후 이성계의 아들들에게는 '대군'이 아닌 '군'의 칭호가 내려졌고, 훗날 대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신의왕후 한씨는 태조 이성계의 첫째 부인으로 증영문하부사 한경의 딸이다. 그녀는 이성계가 아직 벼슬을 하지 못하던 때에 영흥으로 시집와서 이성계가 왕으로 등극하기 1년 전인 1391년에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 씨의 소생으로 방우, 방과(정종), 방의, 방간, 방원(태종), 방연 등의 6남과 경신, 경선 등 2녀가 있었다.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의 장남 이방우는 조선 개국 후 진안군에 봉해졌다. 찬성사 지윤의 딸과 결혼했으며, 일찍이 음서를 통해 예의판서를 역임했다. 이방우는 이성계의 장자이지만 고려에 마지막까지 충성을 바친 인물로 그려진다. 최근 역사가들은 이방우가 고려의 충신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왕위 계승에서 배제됨에 따라 과음을 하다가 죽었다는 설을 지지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신덕왕후 강 씨의 계략으로 왕위 계승 배제가 된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차남 이방과는 조선 개국 후 영안군에 봉해졌다. 형제들 중 유일하게 이성계가 왜구 등을 토벌할 때 종군하였으며 사실상 동북면 가별초를 지휘할 후계자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것을 열열하게 희망했으나 그 자신이 왕의 후계자로 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용맹한 군인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능력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이방원과 함께 정몽주 격살, 1차 왕자의 난 등을 함께 했으며, 형인 이방우가 죽은 후 왕세자에 책봉되어 조선 제2대 국왕 정종으로 등극한다. 이후 동생의 눈치를 보면서 정치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 처세로 목숨을 보존한다. 실권 없는 왕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삼남 이방의는 조선 개국 후 익안군에 봉해졌다. 왕자들 가운데 야심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존재감이 미약하여 드라마에서 크게 비중이 없는 인물이다.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날 때 이방원을 도왔으며, 2차 왕자의 난에는 간접적으로 이방원을 도왔다. 이후 병으로 사망하자 이방원이 매우 슬퍼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남 이방간은 조선 개국 후 회안군에 봉해졌다. 왕자들 중 가장 야심이 많은 인물로 표현이 되며, 박포의 꾐에 넘어가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여러 드라마에서 동생 이방원에 대해 질투를 하는 모습이 많이 그려진다. 난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동생 방원의 배려로 천수를 누리다 병으로 사망한다.
오남 이방원은 조선 개국 후 정안군에 봉해졌다.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태조 이성계와 함께 중심이 되는 인물로서 1차 왕자의 난과 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조선의 3대 국왕 태종에 등극한다. 국왕에 오른 후 절대왕권을 가지고 왕권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피의 숙청을 감행하였으며,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초기 혼란스러운 조선이라는 나라를 안정시킨다.
신덕왕후 강씨는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고려의 권문세족인 판삼사사 강윤성의 딸이다. 태조 이성계의 집권 거사에 참여하였으며, 조선 개국 후 이성계의 지지 속에 절대적인 권력을 얻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아들 팔남 이방석을 세자에 책봉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병으로 사망함에 따라 그의 아들들은 이방원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이방원에게 원경왕후 민 씨가 내조를 했다면 이성계에게는 신덕왕후 강 씨가 절대적인 내조를 했다. 조선 초기 두 여인은 남편을 왕으로 등극시킨 여걸들로 표현된다.
신덕왕후 강씨의 장남이자 태조 이성계의 칠남 이방번은 조선 개국 후 무안군에 봉해졌다. 어린 시절 고려 왕족 귀의군 왕우의 딸과 결혼했다. 조선 개국 후 세자로 내정되었으나 조준, 정도전 등은 '성격이 광망하고 경솔하다'고 세자 자리를 방석에게 빼앗겼다. 고려 왕족과 결혼했기 때문에 족보가 꼬여서 명분상 방번은 절대로 세자에 책봉될 수 없었다.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날 때 그는 의흥친군위절제사로 군권이 상당했지만 이방원과 이방석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다가 결국 이방원에 의해 제거된다.
신덕왕후 강씨의 둘째 아들이자 태조 이성계의 팔남 이방석은 조선 개국 후 의안군에 봉해졌다. 조선 최초의 왕세자이자 폐세자로 비운의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개국 과정에서 신의왕후 한 씨의 소생들이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되자 모든 원망이 그에게로 향했다. 세자에 책봉된 후 후계자 수업을 착실하게 들었으나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 씨가 병에 걸린 사이 이방원과 형제들은 차분히 난을 준비했다. 특히 신덕왕후 강 씨가 일찍이 병으로 사망함에 따라 이방석의 운명은 정해졌다. 그리고 1차 왕자의 난으로 이복형들에 의해 살해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다.
이성계의 주요 가계도는 아래의 내용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