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의 킹메이커 하륜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인물들 가운데 조금 특이한 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태종 이방원의 책사이자 킹메이커로서 활약을 했던 하륜이라는 인물이 오늘 소개할 주인공이다. 용의 눈물에서 배우 임혁이 연기함에 따라 하륜이라는 인물이 매우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인물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육룡이 나르샤에서 조희봉이 연기한 하륜이 좀 더 실제 인물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륜은 고려 말에는 권문세족의 일원으로 상당한 권세를 누렸다. 하지만 의외로 정몽주,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처럼 목은 이색에게서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1360년에 국자감시(국자감에서 진사를 뽑던 시험)에 합격한 후 1365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승승장구했지만 신돈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기도 했다. 또한, 최영의 요동 정벌을 반대함에 따라 양주로 추방되었는데, 이성계 일파에게는 이색의 제자로 낙인찍혀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상당히 정치적 행보가 특이한 편으로 볼 수 있다.
하륜은 고려의 최고 권력자였던 이인임의 조카사위로 언제든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파라만장한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을 보면 처세술의 달인답게 이인임의 권력의 끝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인임의 권력이 떨어진 후 인척이라는 이유로 유배를 당했는데 조선 개국 후 정계로 복귀하였다.
조선 건국을 설계한 정도전과는 사이가 나빳던 것으로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색의 아래에서 함께 동문수학을 하던 사이였으나 역성혁명을 꿈꾸던 정도전의 입장에서 함께 동문수학을 하던 이들은 조선에 방해가 되는 인물로 여겼을지 모른다. 반면, 하륜은 이색의 비문을 쓸 정도로 의리를 지켰다고 한다.
이성계가 개성에서 민심을 얻지 못하자 새로운 도읍을 찾아 옮기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이때 하륜은 무악 일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정도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당시 정도전은 '술수를 부리는 자의 의견을 들을 수 없다'며 모욕적인 언사를 은연중에 말했다고 한다. 하륜은 큰 모욕을 느꼈으나 정치적으로 실권을 쥐고 있는 정도전에게 도전을 할 수는 없었다.
이에 이성계가 집권하는 시기에는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없었음 깨닫고 민제의 추천을 받아 이방원과 친교를 맺게 된다. 그리고 1차 왕자의 난을 성공시키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또한, 이방원의 행동대장으로 유명한 이숙번을 천거하였고, 당시 이숙번이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을 1차 왕자의 난 때 동원을 함에 따라 성공할 수 있도록 안배하였다.
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하자 정종이 즉위할 때 정사공신 1등으로 진산군에 봉해졌고, 그토록 바라던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함에 따라 좌명공신 1등에 책록 되었다. 말 그래도 킹메이커로서 최고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정계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한 것이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중앙 집권 체제 아래 태종의 개혁 정책에 앞장서서 다양한 정책을 입안하거나 집행하였다. 대표적으로 군제 개혁, 호패법 시행, 조세 제도 정비, 신문고 설치 등이 있다. 처세술의 달인으로 잘 알려졌으나 개인의 처세를 떠나 정치적인 수완이 상당했던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드라마 용의 눈물의 하륜과 같이 매우 강직한 인물로 세종 시절 황희 정승과 같은 모습으로 현대에 알려질 수도 있는 인물이었으나 매우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는 기록이 곳곳에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친인척들과 함께 백성들을 동원하여 남의 전답을 빼앗거나, 인재를 추천할 때 뇌물을 받아먹다가 탄핵을 당했다고 한다. 유배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태종은 하륜의 공을 생각하여 큰 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을 이방원에게 추천해준 민제에 대한 의리로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외척 제거 대상에 올랐을 때 이들을 비호해주려고 하다가 큰 곤경에 처할뻔 하기도 했다. 또한, 세자가 아닌 다른 형제들을 죽이려고 한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가고 했다가 태종에게 목이 달아날 뻔했다. 이러한 실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숙번, 이거이, 민제의 아들들과 같이 숙청당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뇌물을 받아먹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해먹을 것이고, 정치적으로 태종의 행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에 제거당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태종의 다음 왕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인물로 처세를 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살아남았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의 가후를 보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