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의 장인 민제
여말선초 태종 이방원의 장인이자 원경왕후 민 씨의 아버지 민제라는 인물을 살펴보자. 고려 시대 여흥 사람으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면서 맑고 소박해 사치를 싫어했다고 알려졌다. 독서를 좋아해 1번만 읽어도 바로 기억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인물로 사위인 이방원 역시 민제에게 학문을 배웠다.
1357년(공민왕 7년)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직학에 임명되었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어 요직을 두루 임명되었다. 민제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 개국 이후이다. 이성계 집안과 사돈을 맺은 후 위화도 정벌 당시 그의 아들들이 볼모로 잡혀있었는데, 민제 집안 역시 경계를 받기도 했다. 고려가 멸망한 후 조선이 건국되자 7월에 자헌대부 예문춘추관 태학사에 임명되었다.
조선에서도 민제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주요 요직에 올랐다. 1394년 정당문학 동판도평의사사 수문전학사에 임명되었다가 그해 겨울에 명나라에 파견된 후 삼사우복야보문각대제학에 임명되었다. 1398년 정헌대부가 더해졌다가 옮겨져 보국숭록대부 여흥백 영예조사 겸 판봉상사농시사 수문전 태학사가 되었다. 1399년 판삼사사가 되었으며 1400년 3월에 수충보조공신에 봉해지고 여흥백으로 작위가 올려졌다. 태종이 즉위한 후 원경왕후가 중전이 되자 순충이라는 호를 받아 여흥백에 봉해졌다. 1401년 여흥부원군에 봉해졌다.
정안군 이방원이 2차 왕자의 난을 수습한 후 왕에 오르자 민 씨 집안은 단숨에 최고의 권력을 가진 집안으로 부상한다. 민제의 아들인 민무구, 민무질 역시 왕자의 난에 적극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때까지 원경왕후와 민무구 형제는 세상을 다가진 기분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권력을 누구에게도 나눠줄 생각이 없었고, 특히 외척에 대해 큰 경계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결국 민제의 아들들은 외척이 되어 지나치게 교만하고 방자하다는 탄핵을 받아 유배된 후 사사되었다. 민제의 말년에 민무구, 민무질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최대한 권력에서 멀어지도록 안배하였으나 아들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대중매체에서는 민제에 대해 대부분 선비의 표본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성품이 온화하고 소박하지만 신념을 위해 강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특히,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권력다툼을 하지 않고 이방원을 아껴 늘 뒤에서 보듬어주는 정신적 지주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륜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이방원에게 그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말년에 아들들의 교만으로 집안이 기울어가는 것을 보다가 세상을 떠나는 비운의 인물로 비쳐진다. 다만, 충녕대군의 장인인 심온이 딱히 교만하거나 권력을 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미리 대비하기 위해 그의 집안을 멸문시키는 모습을 보면 어떠한 형태든 경계의 대상이 되어 민 씨 집안은 거덜 났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