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고사성어 중 비육지탄(髀肉之嘆)에 대해 살펴보자. 비육지탄은 삼국지 연의의 주인공인 유비가 라이벌 조조에게 패한 후 유표에게 의탁할 시절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우선, 비육지탄의 한자를 풀이해보자.
髀(넓적다리 비), 肉(고기 육), 之(갈 지), 嘆(탄식할 탄)
비육지탄을 직역해보면 "넓적다리 즉 허벅지에 살이 붙어 탄식한다" 정도로 해석된다. 이 고사성어의 유래를 덧붙여보면 "큰 뜻을 품은 대장부가 세상에 나와 뜻을 펼치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는 말"로 풀이된다.
비육지탄은 실제 삼국지 정사 촉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유비는 형주에서 수년 동안 거주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표가 유비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 유비는 자신의 넓적다리에 군살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유표가 이상하게 여겨 까닭을 묻자 유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늘 말안장에서 떨어져 있은 적이 없으므로 넓적다리에 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말을 타지 않으므로 넓적다리에 살이 붙었습니다. 세월이 이처럼 빨리 흐르고 자꾸만 늙어가는데 어떠한 공업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슬픕니다."라고 말했다.
이 일화의 내용을 부가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비는 탁현 출신으로 다른 군웅에 비해 매우 미약하게 출발을 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반 세력을 마련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황건적의 난이 평정된 후 공손찬의 도움으로 청주 평원군의 수평원령이 되었다. 공손찬과 원소가 대립하던 시기 유비는 공손찬을 도와 군공을 세웠으며, 이후 도겸과 조조가 맞붙던 도중 도겸의 원군으로 서주로 향했다. 마침 도겸의 수명이 다하게 됨에 따라 서주를 유비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겼고, 유비는 처음으로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여포에 의해 지지기반을 잃어버리고 조조와 원소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결국 유표에게 의지하게 이르렀다.
이처럼 유비는 평생을 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살아왔다. 그러나 유표에게 의지한 후 평생의 정적인 조조는 착실히 세력을 넓혀갔으나 자신은 허송세월을 보낸다고 여겼을 것이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유표가 같은 유씨 집안의 핏줄로 무한정 의리를 베풀지만 사실 유표는 유비를 방패막이로 삼아 신야 일대를 방어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유비가 유표를 충동질하여 조조를 공격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눈치가 없는 조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친조조파인 채 씨 집안사람들에 의해 제거당할 뻔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유표 역시 유비를 필요로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독자적인 세력으로 크게 된다면 독립할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50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여기는 유비지만 조조와 같이 유비 역시 난세의 영웅으로 새로운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평생의 숙원이었던 제갈량과의 만남 이후 천하삼분지계의 계략에 따라 촉나라를 정벌한 후 촉한 황제가 된다.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당대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므로 비육지탄의 고사성어처럼 비록 답답한 마음이 있더라도 항상 미래를 바라보면서 포기하지말고 좋은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포착하는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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