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2차 왕자의 난 혹은 박포의 난을 일으킨 박포에 대해 살펴보자. 고려말 박포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대장군에 봉해되고, 죽성군에 봉해졌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는 과정에서 장군으로 큰 공을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박포의 성격을 보면 참을성이 부족해 불만을 쉽게 토로했던 것으로 보인다. 1393년 세자 이방석의 세자빈이었던 현빈 유씨의 일을 함부로 논했다가 근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한, 이성계에게 국정을 잘못해 변고가 있었다고 직언을 하다가 죽주에 유배되었다. 1396년 황주의 수령이 되었고,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가담해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의 동정을 정탐하는 등 공을 세웠다.
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한 후 지중추원사 의흥 삼군부 우군 동지절제사(종2품)에 임명되었지만 2등 공신에 봉해진 논공행상에 불만을 토로했고, 정안군의 미움을 사서 죽주로 유배되었다. 공신에게 비교적 너그러웠던 이방원이 격노했다고 하니 뒷담화의 수위가 강했던 것 같다. 사실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숙번을 비롯한 민 씨 형제들은 모두 2등 공신에 봉해졌으며, 조준 등과 같은 원로 대신을 1등 공신에 봉해 정치적으로 안배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2등 공신인 이숙번 등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을 볼 때 박포의 정치력이 형편없음을 알 수 있다.
정안군 이방원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박포는 회안군 이방간을 충동질하여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도록 했다. 하지만 준비 없이 감정적으로 일으킨 군사였기 때문에 잘 정비된 이방원의 군사들 앞에서 추풍낙엽과 같이 흩어졌다. 박포는 체포되어 관직이 삭탈되고 장형 1백 대를 받아 청해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이방원이 자신의 형제를 차마 죽일 수 없어 모든 죄를 박포에게 뒤집어 씌운 후 처형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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