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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본史:)에도시대

신선조 귀신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

by 알풀레드 2023.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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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 말기 최후의 무사 집단으로 잘 알려진 신선조(신센구미, しん選せん組ぐみ)는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막부 말기 혜성처럼 나타나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산화해 버린 신선조는 비밀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실 일본에서 신선조는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조직이었으나 시바 료타로의 소설로 인해 신선조가 부각되었고, 신선조 내 간부들은 개성 있는 영웅으로 미화되었다. 국내에 신선조라는 조직이 알려진 것은 아마 바람의 검심이라는 코믹북의 영향이 크다.

 

출처. 영화 타올라라 검, 코믹북 바람의 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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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조 내 개성 강한 인물들을 열거하자면 신선조 국장 곤도 이사미, 부국장 히지카타 토시조(히지가타 도시조),  오키타 소지, 나가쿠라 신파치, 사이토 하지메, 토도 헤이스케, 하라다 사노스케 등이 있다. 이 중 오합지졸이었던 미부 로시구미(낭인 집단)를 신선조로 탈바꿈 시켜 막부 최강의 무사 집단으로 만든 부국장 히지카타 토시조에 대해 살펴보자.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

 

히지카타 토시조는 1835년 5월 31일(음력 5월 5일) 무사시 국 다마 군 이시다촌에서 태어났다. 토시조는 부유한 농부 집안 출신으로 10명의 형제자매 중 막내였다. 유년시절 부터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상당히 잘생겼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잃은 후 둘째 형인 기로쿠 부부에게 키워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상당히 악동으로 자랐다. 철이 들 무렵 독학으로 공부한 검술을 수행하기 위해 이시다 산약을 파는 약장수로 위장해 지역 도장을 찾아가 시합을 하는 것으로 각종 매체에서 표현된다. 매체에서는 도장 깨기를 하면서 수행한 것으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연습을 위해 방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바람의 검 신선조

 

이 과정에서 천연이심류 4대 곤도 이사미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859년 3월 29일 천연이심류에 정식입문했다. 곤도 이사미와 의형제를 맺고 오키타 소지, 이노우에 겐자부로 등과 인연을 맺는다. 또한, 시에이칸과 교류하던 나가쿠라 신파치, 하라다 사노스케, 야마나미 케이스케, 토도 헤이스케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출처. 타올라라 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에도 시대에 평민인 히지카타 토시조가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갖추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론해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무사를 동경해 자신을 무사 가문으로 사칭해 다른 지역에 있는 유파를 찾아가 배움을 얻은 경험이 천연이심류 도장에서 결실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무사를 동경한 이유로는 그의 고향인 타마 지역(무사시국 타마군)은 막부 직속의 영지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막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천연이심류의 실력은 평범하였으나 실전에서는 누구보다 강했다고 한다. 애도은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와 호리카와 쿠니히로(와키자시)이다. 

 

출처. 타올라라 검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시에이칸의 동지들은 1863년 제14대 쇼균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고메이 덴노의 부름으로 천황이 사는 쿄로 상경해 '양이'를 맹세하러 갔을 때 호위를 명목으로 낭인 집단 로시구미(낭사대)를 모집할 때 참가하였다. 하지만 로시구미를 창설한 키요카와 하치로는 로시구미가 쿄에 입성하자 로시구미는 쇼군이 아닌 천황의 병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였던 로시구미는 순식간에 와해되었고, 시에이칸의 동료들과 세리자와 카모를 따르는 무사들 등이 쇼군에게 충성한다는 명분으로 교토의 미부에 남게 된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좌: 시에이칸 동료들, 우: 세리자와 카모)

 

쿄에 남은 미부로시구미는 세리자와 카모의 연줄로 교토 수호직 아지즈 번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후원을 받아 신선조(신센구미)라는 이름을 하사 받는다. 당시 신선조는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게 되는데, 곤도 일파와 세리자와 카모 일파로 나뉘어 대립한다. 세리자와 카모는 신도무념류의 달인으로 실력은 발군으로 알려졌으며 그와 함께 미토 번사였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즉 미토 번사 출신인 세리자와 카모의 인맥으로 교토수호직 아이즈번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그렇기에 세리자와 카모는 필두 국장으로 선출되었고, 세리자와 카모 일파인 니이미 니시키 역시 국장에 올랐다. 곤도 일파에서는 곤도 이사미가 국장이 되었으나 입지가 약했다. 다만, 히지카타 토시조는 정책을 입안하고 실무를 담당하는 부국장 자리에 자신과 야마나미 케이스케 등이 담당함으로써 서서히 신선조를 곤도 일파 사람들로 우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세리자와 카모는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는 조직의 수장이었으나 상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거나 기분에 따라 인명을 살상하는 등의 행위로 인해 민원이 아이즈번으로 들어간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히지카타 토시조는 세리자와 카모의 난폭한 행위로 아이즈번의 후원을 잃어버릴 것을 우려하여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우선, 국장의 난폭한 행위에 따라 조직의 질서가 흐트러질 것을 염려하여 국중법도를 고안한다. 무사다운 행동을 지키지 못할 경우 스스로 할복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1. 무사도를 지킬 것, 2. 조직을 나가지 말 것, 3. 돈을 갈취하지 말 것, 4. 마음대로 송사를 처리하지 말 것, 5. 개인적인 싸움을 하지 말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보통 신선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국중법도가 너무 엄격해 시대에 뒤처진 집단으로 취급하지만 당시 무사 계급이 아닌 일반 농민이나 부랑자들이 많았던 상황에서 토시조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설에는 국중법도는 토시조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와 후대 창작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출처. 바람의검심

 

국중법도를 고안한 토시조는 분열된 신선조를 하나로 뭉치기 위해 세리자와 일파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우선, 세리자와 카모의 오른팔격인 니이미 니시키의가 국중법도를 어긴 사실을 밝혀내어 강제로 할복하게 만든 후 세리자와 카모를 암살한다. 세리자와가 암살된 후 신선조는 곤도 이사미가 유일한 국장이 되었고, 야마나미 케이스케가 총장이 되었다.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신선조는 새롭게 개편된다. 10개의 조로 편성하였는데, 당시 1번대 조장 오키타 소지, 2번대 조장 나가쿠라 신파치, 3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가 유명하다.

 

출처. 바람의검 신선조 드라마

 

조직 개편 후 신선조의 용맹을 알린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이케다야 사건이다. 신선조는 아이즈번주의 뜻에 따라 불량 낭사들로 부터 치안을 지키라는 명을 받게 된다. 불량 낭사들은 탐색하는 과정에서 조슈번의 첩자인 후루타카 슌타로를 포박한다. 후루타카 슌타로를 상대로 고문을 한 결과 조슈번은 교토 거리를 방화한 후 천황을 빼돌리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이 계획을 모의하기 위해 특정 장소에 모일 예정임을 알아낸 후 아이즈번에 보고한다. 하지만 아이즈번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했다. 

 

출처. 타올라라 검

 

신선조는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곤도와 토시조는 조를 분담해 교토 거리를 탐색하기 시작했고, 곤도는 산죠코바시 여관 이케다야에서 집회를 하고 있던 낭인을 발견한다. 곤도가 이끌던 조는 수가 적었으나 용맹한 정예 용사(곤도 이사미, 오키타 소지, 나가쿠라 신파치, 토도 헤이스케 등)들로 구성이 되었는데, 20명이 넘는 낭인들을 상대로 착실하게 제거해 나간다. 전투가 한참이던 때 토시조의 부대가 현장에 도착하여 남은 낭인들을 포박하였다. 이 과정에서 토시조는 이케다야 현장에 아이즈번의 병사들이 도착하자 그들이 현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은 후 신선조가 현장을 정리하도록 하여 그들의 공을 빼앗기지 않게 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출처. 타올라라 검

 

이케다야에서 공을 세운 신선조는 아이즈번의 후원을 받으면서 전성기를 누린다. 이케다야 사건 이후 토도 헤이스케의 소개로 이토 카시타로가 문하생들을 이끌고 신선조에 가입한다. 학식이 뛰어났던 이토 카시타로는 즉시 참모에 발탁된다. 하지만 이토 카시타로는 좌막파인 신선조를 근왕파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이 과정에서 이토 카시타로는 고료우에지라는 조직을 만들어 신선조를 탈회하였고, 곤도 이사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사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토시조는 즉시 이토 카시타로를 암살하고, 그의 시신을 길거리에 방치하여 시신을 수습하러 온 고료우에지 대원들을 참살한다. 

 

출처. 타올라라 검

 

신선조의 영광은 이토 카시타로를 암살한 사건까지였다. 신선조가 강력한 무사 조직이었으나 결국 소규모 부대일뿐 시대를 바꿀 수 없었다. 신선조를 후원하고 있던 막부는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도발로 점차 위기를 맞이한다. 신선조는 양이라는 가치를 내걸었으나 양이를 위해 활동하는 지사들을 살해하였고, 이에 염증을 느낀 야마나미 케이스케가 탈주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또한, 이토 카시타로를 암살할 당시 토도 헤이스케도 동료의 손에 살해되었다. 신선조는 전투 중 사망한 대원보다 내부 규율에 의해 할복을 한 대원이 더 많을 정도로 엄격한 규율을 적용받았다. 이에 히지카타 토시조는 귀신 부장이라는 별명까지 생겨났다. 

 

출처. 바람의 검심

 

1867년 6월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대정봉환(조정에 정권을 반납하는 것)을 단행한다. 이로써 일본 특유의 본건 문화 속에서 패자의 자격을 가졌던 에도 막부는 일반 다이묘로 돌아가게 되었고, 삿초(사쓰마 번, 조슈 번) 세력은 도쿠가와 가문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막부 세력과 삿초 세력이 교토 남쪽 교외의 도바, 후시미에서 격돌하게 되는데, 토시조는 신선조를 이끌고 분투하였으나 대패한다. 토시조는 칼의 시대가 끝났음을 통감하고 군대를 서양식으로 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대세가 기울어짐에 따라 신선조 내부에서 다양한 변화가 생겨났다. 신선조는 갑양진무대 부대로 개편되었고, 전투에서 계속 패퇴를 거듭하다가 나가쿠라 신파치와 하라다 사노스케가 신선조를 탈퇴한다.  

 

출처. 바람의 검 신선조(드라마)

 

1868년 4월 나게레야마에서 훈련하던 신선조는 신정부군의 기습으로 포위당했고, 곤도 이사미가 체포되어 이타바시 처형장에서 처형된다. 신선조의 동료들이 탈퇴하거나 죽음을 당하였으나 토시조는 신정부군에 대항하는 마음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토시조는 구막부군에 합류하여 북상한다. 하코다테 전쟁에 참가한 토시조는 육군봉행에 임명되어 신정부군을 상대로 저항한다. 하지만 신정부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막부군은 점차 사기가 떨어졌고, 항복하게 된다. 하지만 토시조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면서 부대를 이끌고 지휘를 하다가 총탄에 맞아 사망한다. 

출처. 바람의 검 신선조, 신선조 혈풍록

 

다양한 매체에서는 단신으로 신정부군을 향해 돌격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일설에는 항복을 하려는 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시신은 막부군에 의해 수습되었으며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타마 군에서 태어난 농민 출신의 히지카타 토시조는 혼란의 시대를 질주하면서 막부의 어떤 사무라이보다도 더 사무라이와 같은 불꽃같은 삶은 산 인물이다. 신선조와 토시조는 유신 정부가 신설되는 과정에서 패자의 역할을 맡아 기록이 부실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적에 따라가면서 창작된 이야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시조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들 중 항상 순위권에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타올라라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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