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일본 막부 말기(=막말)를 배경으로 한 인기 만화 바람의 검심을 즐겨보았다면 신선조라고 하는 무사 조직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신선조는 막말 수도였던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활동했던 막부 휘하의 준군사조직이다. 막부가 유신정부에게 패배함에 따라 몰락한 신선조는 역사의 패배자로 살인자 집단 취급을 받았으나 1960년대 이후 재평가를 받고 있다. 막부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킨 최후의 검객 집단으로 인기를 얻었다. 막말을 배경으로 한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 신선조 등장 배경
1603년 정이대장군에 취임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고 천하의 패권을 확립하여 에도 막부를 열였다. 에도 막부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까지 경제 호황기로 국력을 신장하였으나 18세기 중후반 이후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다양한 정치적 혹은 자연적 사건들이 발생하는데 대표적으로 막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쿠로후네 사건(흑선내항)이 있다. 쇠국 정책으로 일관하던 막부는 미국의 압력으로 개항한 뒤 격동의 동란기에 빠져들었다.
도쿠가와 정권에 억눌려 있었던 다이묘(대표적으로 조슈 번이 있다)들은 존왕양이의 명분을 내세워 막부의 말을 듣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게 되자 통치능력이 상실되었다. 이들은 교토로 몰려와 천황을 받들어 외국 세력을 몰아내고자 하였고, 좌막파 인사들을 대상으로 정치 테러를 감행하는 등 치안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 신선조 결성
이러한 상황에서 제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고메이 덴노의 부름으로 천황이 사는 쿄로 상경해 '양이'를 맹세하러 가게 되었다. 이에 쇼나이 번사 키요카와 하치로가 쇼군을 호위한 다는 명목으로 신분을 구별하지 않고 낭인 집단 모아 로시구미(낭사조)를 결성했다. 하지만 키요카와 하치로는 존황양이파로 교토에 입성하자 쇼군이 아닌 천황의 병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마와구리(견회조)의 사사키 타다사부로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로시구미는 와해된다.
교토로 상경했던 로시구미의 낭인들 중 쇼군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던 24명은 스스로를 미부로시구미로 자처한 후 교토의 치안을 담당했던 아이즈 번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에게 의탁한다.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는 이들에게 신선조(신센구미)라는 이름을 내림에 따라 신선조는 준군사조직으로 공식 인정을 받게 된다. 신선조는 미토 번 출신의 세리자와 카모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과 에도의 시위관에서 함께 교토로 상경한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으로 구성되었다. 다만 시위관 일파는 농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대내에서 발언권이 약했고, 미토 번의 무사 출신인 세라자와 카모가 필두 국장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내부적으로 파벌이 갈린 상황에서 세라자와 카모는 교토에서 난폭한 행동을 거듭하면서 신선조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대표적으로 교토의 상인들로부터 돈을 갈취하거나 사람을 살상하는 등의 행동으로 교토 사람들은 아이즈에 민원을 제기했고,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는 곤도에게 세라자와 카모를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곤도 이사미의 브레인으로 활약했던 히지카타 토시조와 야마나미 케이스케 등은 신분을 구별하지 않고 신선조 대원을 모집하여 곤도 일파 계열로 합류시켰고, 세라자와 카모의 오른팔 니이미 니시키를 할복시키는 등 세라자와 카모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1863년 9월 세라자와 카모를 암살하여 곤도 이사미를 국장으로 하는 새로운 조직 체계를 만들었다.
세라자와 카모 제거 후 히지카타 토시조는 시위관 출신을 중심으로 행동부대를 1번대부터 10번대까지 총 10개 부대로 나누었다. 그리고 곤도 이사미를 국장으로 야마나미 케이스케를 총장, 히지카타 토시조를 부장, 오키타 소지를 1번대 조장, 나가쿠라 신파치를 2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를 3번대 조장, 마츠바라 츄지를 4번대 조장, 다케다 간류사이를 5번대 조장, 이노우에 겐자부로를 6번대 조장, 타니 산쥬로를 7번대 대장, 토도 헤이스케를 8번대 조장, 스즈키 미키사부로를 9번대 조장, 하라다 사노스케를 10번대 조장으로 편성하였다. 또한, 야마자키 스스무, 요시무라 칸이치로를 감찰에, 시마다 카이를 제사취조역 겸 감찰에, 카와이 키사부로를 회계를 맡겼다.
■ 이케다야 사건
신선조의 활약 중 가장 대표적인 이케다야 사건은 조슈 번사들의 음모를 미리 파악해 막아냄으로써 아이즈 번으로부터 확실한 인정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특히 당시 교토의 사람들에게 신선조는 외부에서 온 늑대 같은 무서운 집단으로 인식이 강했으나 이케다야 사건의 활약으로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었다.
1864년 7월 8일 조슈 번과 도사 번의 존왕양이 지사는 아이즈 번의 다이묘이자 교토 수호직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를 암살하고 고메이 덴노를 납치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이를 위해 조슈 번의 낭인들은 산조 키야마치의 이케다야라는 여인숙에서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히지카타 토시조는 조슈 번의 지사 후루타카 슌타로를 체포하여 잔혹한 고문을 한 끝에 자백을 받았다. 즉 고토에 불을 질러 혼란스러운 틈을 타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를 암살하고 덴노를 납치하려고 했다는 자백을 했다.
국장 곤도 이사미는 신선조를 출동시켰고, 이케다야를 급습하여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대승리를 거두면서 신선조의 활약을 만천하에 알렸다.
■ 신선조의 최후
이케다야 사건 이후 곤도 이사미는 막부 직속 신하로 인정받고 다이묘가 되었으나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이 힘을 합침에 따라 몰락의 시간이 다가왔다. 특히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대정봉환을 선언함에 따라 막부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이에 신선조 대원들의 이탈이 늘어났고, 신선조는 갑양진무대라는 이름으로 신정부군에 대항하였으나 다시 패배하였다. 이때 곤도 이사미는 신정부군에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오키타 소지가 지방이었던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등 핵심 인물들이 점차 세상을 떠났다. 막부군은 하코타테까지 밀려났고, 결국 신정부군에 항복을 하면서 완전히 소멸된다. 이때 히지카타 토시조가 총탄에 맞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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