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의 왕비이자 조강지처인 원경왕후 민 씨에 대해 살펴보자. 원경왕후 민 씨의 본관은 여흥 민 씨로 여흥부원군 민제와 삼한국대부인 송 씨의 셋째 딸이다. 그녀는 1382년(우왕 8년) 18세의 나이로 2살 아래였던 이방원에게 출가하였으며, 1392년 조선 개국 후에는 남편인 이방원은 정안군, 민 씨는 정녕옹주에 봉해졌다.
원경왕후 민씨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당대 최고의 여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태종 이방원이 태조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과정과 왕자의 난이 일어날 때 든든한 조언자로서 남편을 도왔다. 대표적으로 민 씨의 동생인 민무구와 민무질 등을 남편 이방원의 심복이 되도록 하였고, 정도전 등이 사병을 혁파하려는 시도를 하자 집안에 무기를 숨겨 후일을 도모했다고 전해진다.
1398년 8월 그녀는 정도전 세력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태조가 몸이 불편하여 여러 오아자와 함께 숙직하고 있던 이방원을 몰래 불러내어 정도전 일파의 급습 가능성을 전했다. 이 정보 덕분에 이방원은 선수를 쳐서 정도전 일파에 선수를 쳐서 그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이 일어나기 10일 전 정도전 일파가 왕자들의 사병을 혁파하고 그들의 군장비를 모두 불태울 때 몰래 무기를 숨겨두었다가 거사 날 이방원의 군사들에게 내어주었다.
2차 왕자의 난 때도 자신의 사가의 말이 홀로 집으로 오자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창을 들고 나가 싸우겠다고 말했다. 정종 즉위 후 이방원은 세자로 책봉되어 그녀는 세자빈이 되었고, 결국 이방원이 조선 3대 국왕 태종으로 즉위함에 따라 왕비가 되었다. 다양한 매체에서는 그녀 역시 태종 이방원과 마찬가지로 권력욕이 상당했던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여성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원경왕후 민 씨... 하지만 그녀의 집안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왕이 된 이방원은 왕권 강화에 큰 힘을 쏟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공신들을 경계하였다. 그중 군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민무구와 민무질을 특히 경계하였다. 또한, 그들의 동생인 민무휼과 민무회 형제 역시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방원은 이들이 세자가 왕위에 오른 후 외척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고 판단하여 가차 없이 숙청을 하게 된다.
민 씨 집안의 몰락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 씨의 불화가 도화선이 되었다. 우선, 태조 이방원은 개인적으로 여성을 좋아한 면도 있지만 외척의 권력 분산과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후궁을 늘려갔고, 원경왕후 민 씨는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었기에 노골적인 투기와 불평을 했다. 특히 역대 왕비들 중 여걸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가 드센 인물이니 태종 입장에서도 상당히 다루기가 힘들었을 것이며, 원경왕후에 대한 불만이 민 씨 집안에 불행이 닥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 씨의 불화로 상왕으로 물러난 형 정종까지 나서서 중재를 했다고 하니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태종 이방원이 민무구 형제를 사사할 때 원경왕후 민 씨는 노골적인 불만을 표현하며 왕비에서 쫓겨날 처지까지 몰리지만 세자와 왕자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경고만 하였다. 싸우면서 정이 드는 애증의 관계였던 것인지... 그 와중에도 정선공주, 성녕대군 등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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