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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史:)조선시대

이성계의 아들들:) 조선 초대 왕세자이자 폐세자 의안대군 이방석

by 알풀레드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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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8남이자 신덕왕후 강 씨의 소생인 의안대군 이방석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의 초대 왕세자이자 1차 왕자의 난으로 세자에서 쫓겨난 비운의 인물이 바로 의안대군 이방석이다. 즉, 초대 왕세자이자 최초의 폐세자이다. 

 

출처. 육룡이 나르샤(세자 이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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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할 당시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를 비롯한 장수들의 가족들은 인질로 삼았는데, 위기의 순간 이복형 이방원이 계모인 강 씨와 이방석, 이방번 등을 피신시켰다. 당시에 이방원은 고려 권문세가의 일족이자 계모인 강 씨의 덕을 많이 봐서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출처. 태종 이방원

 

하지만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면서 이들의 운명은 엇갈리게 된다. 계모 강씨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고, 이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소생 중 한 명을 이성계의 후계자로 삼을 계획을 세우게 된다. 문제는 조선 개국 과정에서 이방번이나 이방석이 전공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지만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 전공을 세울 여지가 없었다. 또한, 위로 다섯 명의 이복형들이 있는데 그들을 제치고 세자에 책봉되니 형제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결국 1차 왕자의 난을 불러오게 된다. 

 

출처. 용의 눈물(세자 이방석)

 

조선 개국 1달여 만에 10살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된 이방석... 본래 태조는 이방번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하였으나 공신들인 배극렴, 조준, 정도전 등은 방번의 "행실이 광망하고 경솔하다"하여 결국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된 것이다. 사실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된 것은 정치적 노림수가 있었다. 조선 개국 후 후계자의 나이를 고려하여 가장 길게 통치를 할 수 있는 인물이자 고려와 어떠한 연줄이 없는 왕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즉 무장 출신의 가문인 이성계로서는 자식들이 제왕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어린 후계자를 체계적인 교육을 시켜 후대 왕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출처. 육룡이 나르샤(세자 이방석)

 

이러한 판단은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 우선, 태조와 신덕왕후 모두 건강한 상태로 통치를 했다면 불만을 가진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들은 함부로 나설 수 없었겠지만 태조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고, 신덕왕후는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 건국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방원을 중심으로 형제들과 함께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고 이복동생인 이방번과 이방석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때 이방석의 나이는 17세였다. 

 

출처. 육룡이 나르샤(세자 이방석)

 

1차 왕자의 난이 끝난 후 정종과 태종은 정당화 작업을 하였는데 이방석은 서자로 격하당했다.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정실이므로 엄연한 적자지만 왕자의 난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렇게 했다. 또한, 신덕왕후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으로 그녀에 대한 예우마저도 후궁으로 격하시켰다고 한다. 

 

출처. 나의 나라(무안대군 이방석)

 

후에 세종의 여섯째아들 금성대군이 방석의 후사를 이었으나 금성대군이 세조에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하고 32세의 나이로 처형되자 이방석의 후사는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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