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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史:)사건-사고

1999 인천 인현동 라이브 호프집 화재 참사

by 알풀레드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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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라고 불린다.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로 불리는 이유는 무려 56명의 사망자와 7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망자의 상당수가 중, 고등학생이었다. 이 화재 참사에 대해 SBS 시사 예능 프로그램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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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발생했던 인현동 '라이브2호프'는 4층짜리 상가 건물로 지하는 노래방, 1층은 고깃집, 2층은 호프, 3층은 당구장이었다. 비극의 시작은 노래방에서 일하던 10대 아르바이트생 2명이 불장난을 하면서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화염과 유독 가스가 순식간에 3층까지 올라간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화재 발생 후 1층 고깃집과 3층 당구장에 있던 사람들은 금방 알아채고 피신을 하였기 때문에 사망자가 없었다. 하지만 2층 호프집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그렇다면 왜 호프집에서 5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것일까? 그 이뉴는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내부 구조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호프집은 인근 학교 축제가 끝나면서 수많은 학생들이 뒤풀이를 위해 해당 호프집을 방문했다. 호프집은 50여 평 규모의 공간이었는데,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즉 화재 발생 후 유독 가스로 인해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게 되었고, 우왕좌왕 하다가 사람들에게 치여 현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사람들은 출입구로 빠져나가려고 시도하였는데, 호프집 주인은 비상 상황에 돈을 내고 나가라며 출입구를 봉쇄했다고 한다. 결국 출입구가 봉쇄됨에 따라 유독 가스에 노출된 학생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질식사하였다.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참혹한 현장을 보고 절망하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유독 가스를 피해 환풍구로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환풍구 주변에 시신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두 번째 이유는 나쁜 어른들의 불법적인 행위로 인해 참혹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전까지 호프집은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팔다가 수 차례 단속에 걸린 곳이었다. 문제는 지역 경찰과 친분이 있어 초동 대처 없이 암암리에 눈을 감아주었다고 한다. 또한, 안전 기준 미달로 적발되어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허가 영업을 하였는데, 이 또한 공무원을 매수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으로 인해 한창 꿈을 꾸어야 할 수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끝으로 화재 예방을 소흘히 했다. 당시 불이 난 노래방은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공사가 방해된다는 이유로 허가 없이 스프링클로가 제거되었다. 이로 인해 초기진화에 실패하면서 참사가 발생했다. 결국 사회의 고질병처럼 퍼져있던 안전불감증이 빚은 참사와 어른들의 이유로 만들어낸 참사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사고 발생 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으나 언론은 학생들에게 냉담했다. 그 이유는 미성년자들이 호프집을 갔기 때문이다. 마치 청소년들의 탈선을 하다 죽은 것이기 때문에 억울할 이유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 학교나 정부, 교육청 등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학생들에게 떠넘기려고 한 행위로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 참사로 호프집 주인과 공무원 등은 구속이 되었으나 미미한 처벌을 받은 후 풀려났다. 과연 이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풀어갈지... 아직 방송을 보기도 전인데 가슴이 먹먹하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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