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8년 태종 이방원은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킨 세자 이제를 폐세자 시킨 후 셋째 아들인 충녕 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결단을 내린다. 그동안 세자 이제가 훗날 국왕에 오른 후 마음껏 포부를 펼칠 수 있도록 외척인 민 씨 집안을 풍비박산을 낸 보람이 사라지는 순간이 되었다. 자신의 아내인 원경왕후의 원망을 들으면서도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 태종 이방원은 충녕대군을 위해 또 다른 결단을 내렸다.
바로 충녕대군의 장인인 청송 심씨심 씨 가문의 심온을 경계하여 숙청하였다. 그렇다면 심온은 어떤 인물이었고, 그의 가문은 왜 경계의 대상이 되었을까? 우선 청송 심 씨 가문은 고려 시대부터 명문 가문으로 그 위세가 민 씨 가문보다 더 컸다고 한다. 다만, 대중 매체에서 심 씨 가문이나 심온은 억울한 죽음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심온은 억울하게 죄를 얻어 사망한 것은 분명하지만 태종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이었다.
고려 시대 태종 이방원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으로 고려의 영웅이었다면, 심온의 아버지 심덕부는 최무선, 나세와 함께 진포대첩을 지휘한 전쟁영웅이었다. 즉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했을 당시 이성계와 조민수가 군부의 실세로 등극했는데, 두 사람의 뒤에는 심덕부가 있었다. 심덕부는 공양왕과 이성계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는데, 정몽주가 득세할 때 그의 편이 되었다. 하지만 이방원이 정몽주를 격살하는 선택을 했고, 다음 타깃은 심덕부가 되었어야 하지만 군부에서 영향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이성계는 그를 회유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심덕부라는 거물을 배출한 청송 심 씨 집안은 조선의 요직에 두루 등용되었다.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시점에 심덕부의 여섯 번째 아들 심종은 왕자들의 편을 들었고, 군부에서 중앙군 요직인 중군 동지총제까지 올랐다. 다섯 번째 아들인 심온은 충녕대군에게 딸을 시집보내게 되면서 훗날 세종 대왕의 장인이 된다. 청송 심 씨 집안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도 쉽게 다룰 수 있는 가문이 아니였기에 외척이 될 경우 충녕대군이 크게 휘둘리게 될 것을 염려하게 된 것이다.
앞서 태종 이방원이 원경왕후의 집안인 민 씨 가문을 제거할 때 장인인 민제는 아들들을 자제시키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청송 심씨 가문은 자신들의 위세를 믿고 혹은 위세를 넓히기 위해 자제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온의 동생 심정은 세자 이제를 보필하도록 명을 받았는데, 세자의 비위를 맞추면서 비행을 부추겼다. 이로 인해 태종 이방원은 한번 손을 보려고 벼르고 있었으나 참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순간 제거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태종 이방원은 세자 이도에게 양위를 선언한 후 상왕이 되었다. 비록 상왕이 되었으나 병권은 끝까지 자신이 가졌는데, 이는 곧 실권은 아들에게 넘겨주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군사 문제는 모두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으나 병조참판 강상인은 태종에게 보고하지 않고, 세종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에 분노한 태종 이방원은 박은에게 강상인을 조사하라고 명했고, 이 참에 배후에 심온이 있다고 연류시키게 된다.
심온의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된 것이다. 당시 심온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세종의 장인이 된 심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전송하기 위해 나왔다고 한다. 이로 인해 장안이 거의 비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니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즉 태종 이방원이 단순한 외척 경계를 넘어 너무 강력했던 청송 심 씨의 힘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강상인은 거열형을 당했고, 심정은 참수형을 심온은 사약을 받았다. 심온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고, 세종은 장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복권시키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만약 세종이 심온을 복권시킨다면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손자인 문종이 즉위한 후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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