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등장하고 있는 고려 말 등장인물들 중 가장 잔혹한 삶을 살았던 두 인물들에 대해 살펴보자. 그 인물은 바로 고려 제32대 국왕 우왕과 그의 아들 제33대 국왕 창왕이다. 부자가 모두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됨에 따라 묘호와 시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휘(왕이나 제후 등 높은 신분을 가진 자가 쓰던 이름)를 따서 우왕과 창왕으로 불린다.
먼저 우왕에 대해 살펴보자. 우왕은 공민왕과 반야의 아들로 어린 시절에는 모니노(석가모니의 종)라는 아명으로 불렸다. 우왕의 어머니인 반야는 공민왕의 개혁을 뒷받침했던 신돈의 시녀 출신으로 훗날 조선 개국의 과정에서 정통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1374년 부왕 공민왕이 홍륜에게 시해당하면서 왕우는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랐다. 특히 혼란스러운 시기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할머니 명덕태후 홍씨가 대리청정을 했고, 실질적인 실권은 이인임이 장악했다. 이인임은 공민왕 시절 개혁의 포부를 가졌던 열정을 가진 인물이었으나 공민왕 사후 권신으로 변하게 되어 나라를 어지럽혔다. 특히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에 고려 최후의 장군인 최영 조차 이인임을 신임했다고 한다.
우왕은 1374년 보위[재위기간: 1374~1388]에 올라 이인임 등 권문세족에게 국정을 일임하였다. 사실 10살짜리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간신들은 우왕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없도록 음주가무와 향락을 하도록 유도하였고, 청년 시절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없었다. 우왕은 한 가지 트라우마도 가지고 있었는데 어머니 반야와 자신을 길러준 유모가 모두 살해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극도로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왕은 애꿎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행동을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사냥을 나가면 사냥터가 아닌 민가에서 백성들이 기르는 소나 닭, 돼지 등 가축을 사냥했고, 처자들을 겁탈하는 등 갖은 비행을 저질렀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 학계에서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나치게 우왕을 비하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진실은 저 너머로...
우왕이 장성하여 정신을 차려보니 권신들에 의해 나라가 개판이 되어 있었다. 특히 권문 세족은 자신들의 권력을 곤고히 하기 위해 사병을 집단화하였고, 대규모의 토지를 독점하여 나라의 재정이 파탄날 지경이었다. 또한,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고, 이 시기부터 전쟁 영웅들과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신진 사대부들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다.
우왕은 직접 실권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우선, 노령이 된 이인임이 은퇴함에 따라 그의 후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최영과 결탁하여 이인임 등의 권문 세족의 힘을 줄이는 데 성공한다. 이에 따라 최영은 정계 일인자가 되었고, 최영을 도왔던 이성계 역시 재상으로 등용되어 큰 힘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원나라가 망한 후 새롭게 등장한 명나라와 국경 분쟁이 일어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우왕과 최영은 요동 정벌을 위해 5만의 군사를 징집한다. 태평성대에 이런 군대를 징집했다면 또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군대를 징집하여 자신들보다 더 강한 나라를 상대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이성계를 비롯한 장군들은 어쩔 수 없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지만 위화도에 다다랐을 때 물이 불어나 군대가 오도 가도 못하고 수백 명의 군사가 익사할 정도로 전쟁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보급 역시 어려운 상황에서 이성계와 조민수는 군대를 돌려 최영과 우왕을 제거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 정예군 5만이 개경으로 처들어오자 최영은 분전하였으나 결국 사로잡힌다. 최영은 73세의 나이로 처형당했고, 우왕은 꼭두각시 왕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환관 80여 명을 이끌고 이성계를 참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이로 인해 결국 폐위된 후 강화도로 유배된다. 현재 이 부분이 각색되어 태종 이방원 2화에 등장한다.
우왕이 폐위된 후 새로운 왕을 옹립하는 과정에서 대업을 함께 이루었던 정치적 동지인 이성계와 조민수가 대립을 하였다. 이성계는 공양왕을 옹립하려고 하였으나 조민수와 이색 등이 강력하게 반대함에 따라 우왕의 아들 창왕[재위기간: 1388년~1389]이 옹립되었다. 이후 우왕은 다시한번 이성계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들통나게 되고, 이성계는 결국 칼을 빼들었는데... 우왕과 창왕은 신돈의 아들이기 때문에 정통성 문제에 시비를 걸어 우왕과 창왕을 처형하였다. 이때의 우왕의 나이가 25세, 그의 아들 창왕의 나이가 10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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