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 비운의 죽음, 그리고 강조의 정변
고려 전기의 제7대 왕이었던 목종에 대해 살펴보자. 목종의 이름은 왕송으로 선대(5대) 왕이었던 경종과 헌애왕후(천추태후)의 장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경종이 젊은 시절 요절함(당시 왕송의 나이는 1살임)에 6대 왕의 자리에는 삼촌 성종이 즉위하였다. 보통 이럴 때는 왕권에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제거당할 위협이 상당했지만 성종의 배려로 왕송과 헌애왕후는 비교적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성종은 약 16년의 재위 기간동안 슬하에 딸만 둘이 있었기 때문에 왕송을 후계자로 삼고 자신의 봉호였던 "개령군"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성종이 죽자 17세의 나이로 제7대 국왕에 올랐다. 즉위 초기 목종은 문무양반 및 군인전시과를 개정하고, 성종대 관직 제도를 정비하는 등 의욕적으로 정사를 돌보았다.
이로 인해 매해 꾸준히 인재를 등용하여 고려 제도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또한, 북송과 요나라 사이에서 중립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고, 강동 6주를 포함한 많은 곳에 성을 쌓거나 보수를 함으로써 훗날 여요전쟁이 벌어졌을 때 중요한 거점이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변방에 있는 군사들의 사기를 막기 위해 잡역을 면제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흉년이 들 때는 백성들의 조세와 공물을 탕감하고, 창고의 곡식을 백성에게 빌려 주는 등 안정적인 민생정책을 펼쳤다.
목종 재위 초기에는 상당히 안정적인 정치를 하였으나 어머니인 헌애왕후로 인해 비극이 시작된다. 헌정왕후는 섭정태후로써 천추태후로 불렸는데, 성종이 죽은 후 외척이었던 김치양을 불러들인다. 김치양은 천추태후의 총애를 믿고 권신이 되어 조정을 혼란에 빠뜨린다. 능력이 없는 인물들이 김치양에게 뇌물을 써서 관직에 오르거나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노역을 하는 등 목종의 치세를 방해한다.
이에 목종은 김치양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번번히 천추태후의 방해로 실패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목종은 정치에 뜻을 잃어버린다. 문제는 목종이 남색에 빠져있었는데, 그 상대가 유행간이었다. 유행간이 목종의 총애를 받은 후 교만하게 굴면서 관료들을 업신여기고 측근 신하들은 유행간을 왕처럼 대우했다. 결국 김치양과 유행간이라는 권신의 등장으로 조정이 여러 파벌로 나누어졌고, 목종은 더 이상 조정을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예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바로 후계자 문제였다. 목종은 아버지의 제4비였던 헌정왕후의 아들인 대량원군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유행간은 자신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였다고 한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통정하여, 아들을 낳게 되는데, 목종이 후계자가 없자 자신들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막장 시도까지 벌이게 된다. 이에 대량원군(훗날 현종)을 살해하려는 시도까지 서슴지 않고 벌인다.
목종은 이러한 조정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를 불러들였다. 강조는 왕의 명령을 받고 즉시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진격하였는데, 권신들이 목종이 죽었다는 소문을 내어 방해한다. 강조는 평주에서 부장들과 회의를 한 후 권신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정변을 일으킨다. 문제는 자신을 불렀던 목종을 폐위한 후 그를 살해한다. 그리고 김치양, 유행간 등의 권신을 제거하였고, 천추태후는 귀양을 보낸다. 이어 왕실의 부패를 척결하고 대량원군을 제8대 국왕으로 옹립한다.
막강한 정통성을 가졌던 목종은 고려 왕조 최초로 폐위된 후 최초로 유배에 처해졌고, 최초로 시해된 왕으로 기록된다. 최근까지 목종은 헌애왕후와 김치양의 전횡을 막지 못한 무능한 왕으로 평가된다. 결국 왕실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후계자 문제와 안정적인 정치를 통해 훗날 여요전쟁에 있어 대비를 하게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면도 함께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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