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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史:)조선시대

민무구 민무질 형제 인물 소개

by 알풀레드 2022.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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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이 조선의 제3대 국왕에 오르기 전 수많은 장수들과 동거동락하면서 위기를 극복해왔다. 그중 이방원의 가장 든든한 힘이 되어 준 인물은 바로 원경왕후 민 씨로 그녀의 내조가 없었다면 결코 왕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비단 그녀 개인의 내조를 떠나 여흥 민 씨 집안의 지지를 받았기에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출처. 태종 이방원(좌: 민제(배우 김규철), 우: 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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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장인인 여흥부원군 민제는 정신적으로 이방원이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의 아들인 민무구와 민무질은 이방원의 심복이 되어 큰 활약을 하였다. 특히, 정몽주를 척살할 당시 이방원은 민무구, 민무질 형제와 모의하였으며, 거사가 성공한 후 꾸준히 이방원을 도왔다.  

 

출처. 용의눈물

 

1398년 민무구는 대장군, 민무질은 호조의랑에 임명되었고,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 이숙번을 천거하기도 했다. 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하자 민무구는 여강군, 민무질은 여성군에 봉해졌다. 1400년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역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출처. 태종 이방원

 

이 과정에서 주요 요직을 겸하게 되면서 군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때부터 태종 이방원은 외척을 경계하기 시작하는데, 1406년 8월 태종은 세자 양녕에게 선위할 뜻을 표명했다.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 과정이 잘 표현되었다. 의안대군(이화)는 '민무구, 민무질은 외척이 되어 지나치게 교만하고 방자하다'라고 탄핵을 당했다.  

 

출처. 태종 이방원(민무구: 배우 김태한)

 

한 일화에서 태종이 민무구에게 '임금에게 아들이 하나만 있어야 하냐'고 묻자, 민무구는 '그렇습니다. 세자 외 영특한 아들이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후계자들이 분쟁을 일으킬 것에 대해 영특한 세자 한 명만 있는 것이 낫다 정도로 이해가 되지만 다른 세자들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비쳤다고 한다. 

 

출처. 태종 이방원(민무질: 배우 노상보)

 

또한, 태종이 선위한다는 뜻을 내비칠 때 양녕대군을 찾아가 불만을 토로한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민무질과 함께 국문을 받고 황해도 연안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지속적으로 올라가자 민제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먼 곳으로 유배할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출처. 태종 이방원

 

태종은 후계자 세종이 안정적인 왕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 외척을 제거하는데 힘을 쓴다. 민무구 민무질 형제 그리고 민무휼, 민무회 형제까지도 사사하게 되니 민 씨 집안은 그야말로 폭삭 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원경왕후 민 씨와의 불화가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종의 장인인 심온 역시 외척 숙청 작업으로 역도에 몰려 사망한 것으로 보아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출처. 태종 이방원

 

만약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아버지 민제와 같이 권력에 초탈한 모습을 보이고 처세에 능했다면 태종의 숙청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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