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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史:)조선시대

이성계의 부인들:) 신덕왕후 강씨

by 알풀레드 202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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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는 74세를 장수하는 동안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다. 그는 총 3명의 아내에게서 13명의 자식을 얻었는데,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 한 씨에게서는 장남 이방우를 비롯한 6형제와 두 딸을 얻었고, 신덕왕후 강 씨에게서는 이방번과 이방석 형제 그리고 딸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다른 후궁에게서 두 딸을 두었다. 

 

출처. 육룡이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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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에게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다. 태종 이방원에게 원경왕후 민 씨가 대업을 이룰 때 여느 개국공신 못지않은 활약을 보인 것처럼 신덕왕후 강 씨 역시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는데 큰 힘을 발휘하였다. 

 

출처. 나의나라

 

신덕왕후 강 씨의 본관은 곡산이며, 판삼사사(고려 시대 삼사의 으뜸 벼슬) 강윤성의 딸이다. 그녀는 신의왕후 한 씨와 달리 권문세가에서 태어났으며, 태조의 집권 거사에도 참여했을 뿐 아니라 조선 개국 후에도 배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출처. 태종 이방원

 

신덕왕후 강 씨의 숙부 강윤충은 이자춘의 형 이자흥의 사위로 이성계와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었고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졌다. 결혼 당시 두 사람의 나이차는 무려 21살... 이성계가 비록 동북면의 군벌이었지만 중앙 정계로 진입하기에는 정치적 기반이 미약했지만 권문세가와 정치적 연계하면서 강력한 지원군을 얻게 된다. 

 

출처. 태종 이방원

 

조선이 건국된 후 강 씨는 현비로 책봉되었으며, 1396년 사망 후 시호는 신덕왕후, 능호는 정릉이라고 하였다. 신덕왕후 강 씨는 고려 말 신의왕후 한 씨의 소생인 이방원과 매우 긴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물론 이방원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 형제들 중 과거에 급제하는 영광을 얻었지만 정계에 진출한 후 신덕왕후 강 씨 가문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출처. 태종 이방원

 

하지만 조선 건국 후 신덕왕후 강 씨는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기 위해 정도전 일파와 손을 잡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의안대군 이방석을 세자로 올리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신의왕후 한 씨의 아들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였고, 특히 이방원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을 것이다. 

 

출처. 태종 이방원

 

문제는 의안대군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된 후 사망하는 바람에 어린 나이의 세자와 그의 형 이방번은 호랑이 같은 동복형제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는 결과를 맞이한다. 그 사건이 바로 1차 왕자의 난, 혹은 정도전의 난이라고 불리는 무인정사이다. 

 

출처. 태종 이방원

 

이 사건 이후 태종 이방원이 국왕에 오른 후 그녀의 무덤은 여러 번 이장된다. 아마도 이성계가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데 대한 분풀이였을 것이다. 또한, 태종은 능을 옮긴 뒤에도 정자각을 헐고, 십이지신상 같은 석물을 실어다 돌다리를 만드는 등 강 씨에 대한 노골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그로 인해 정릉은 현종 때 복구될 때까지 2백여 년 동안 주인 없는 무담으로 버려져 있어야 했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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