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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세민이 일으킨 당나라 판 왕자의 난[현무문의 변]

by 알풀레드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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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그리고 정도전, 신덕왕후 강 씨 등 다양한 매력을 갖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무게를 잡아주는 굵직한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왕자의 난' 일 것이다. 왕자의 난[1398년]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정안군 이방원이 신덕왕후 강 씨와 갈등을 일으키다가 중앙권력에서 밀려나고 생존을 위해 형제들과 함께 난을 일으켜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고 이복동생 세자 이방석과 이방번을 살해하였다. 그야말로 집안의 비극이 아닐 수 없는 사건이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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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왕자의 난과 같이 차세대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들 간 권력투쟁은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어제까지 웃고 놀던 왕자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면 모두 제거했다고 전해진다. 이번에 살펴볼 사건은 '현무문의 변'이라고 불리는 당나라 판 왕자의 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정안군 이방원의 묘호가 태종인 것처럼 현무문의 변을 일으킨 이세민 역시 묘호가 태종이다. 일반적으로 태종이라는 묘호는 동아시아에서 국가 창업자에 비견될 정도로 왕조의 기틀은 다진 왕들에게 붙는다. 두 인물 모두 조선 초기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한 후 왕조가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왕이 될 수 없는 인물들이라 난을 일으켜 왕에 올랐는데, 그 과정이 매우 비슷하다.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

 

당태종 이세민은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를 이끈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당태종이 이끈 군대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정예부대로 알려졌다. 특히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의 정예부대를 물리칠 정도로 최정예 부대였다. 하지만 이런 대군을 상대로 버텨낸 안시성 성주와 군사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세민은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각 지역의 군웅들과의 전투에서 당 고조 이연보다 이세민의 전공이 더 컸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세민의 힘은 막 세워진 황권과 비등할 정도였으나 형제들 중 셋째로 사실상 황태자가 될 수 없었다. 

 

출처. 영화 안시성

 

기록상으로 당고조는 이세민에게 낙양을 중심으로 하는 중원 동부의 문무 행정을 맡기고, 첫째 아들 이건성을 황태자로 세웠다. 물론 황태자 이건성 역시 당나라 건국과정에서 공적을 세웠으나 이세민의 공적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성은 동생 이세민의 군사력을 두려워하였고, 다른 동생들과 힘을 합쳐 이세민을 제거하려고 했다. 반대로 이세민 역시 살아남기 위해 형제들과 대결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당 고조 이연이 적정하게 교통정리를 했다면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624년 돌궐 군이 북방을 침략하였기 때문에 이세민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군사를 지휘할 수 있는 여력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출처. 영화 안시성

 

626년 이세민은 결단을 내린다. 우선 아버지 고조를 찾아가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 형제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고했다. 이에 고조는 다음 날 아침 형제를 모아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고조의 명을 받은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은 궁중의 현무문에 들어섰다. 당시 정예병 2,000명을 데리고 왔지만 군사들 둔 채 궁성으로 들어왔고, 임호전에 와서야 뭔가 잘못된 것 느낀 이건성과 이원길은 이세민의 부하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출처. 영화 안시성

 

이세민은 형제들을 죽이고 당 고조에게 가서 두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 주살을 했다고 보고했다. 고조는 황권을 일어버리게 되고 모든 권력은 이세민이 차지하게 된다. 결국 고조는 이세민을 황태자로 세우고 대권을 물려주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고, 이세민은 이건성과 이원길의 아들을 죽여 후환을 막았다. 당나라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돌궐이 침입하여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현무문의 변을 통해 이세민이 황제로 즉위하고 정관의 치라고 불릴 정도로 국가 경영을 잘했다고 한다. 

 

출처 KOEI

 

비교적 젊은 나이에 황제가 된 이세민은 근검절약을 생활화하여 다른 황족들과 대신에게 모범이 되었다. 또한, 황권에 위협이 될만한 인물은 모두 숙청하여 안정적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수나라와 같은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인재들을 등용하였고, 민생을 안정시켰다. 다만, 고구려 침략을 하다가 나라를 말아먹을 뻔하기도 했다. 조선의 태조 이방원과 같은 길과 다른 결과를 보였던 이세민에 대해 살펴보았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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