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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史:)조선시대

1차 왕자의 난

by 알풀레드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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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인기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조선 전기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묘사되는 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 혹은 이방원의 난이 일어날 것을 예고했다. 왕자의 난은 찰리 체플린의 말과 같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참 어울린다. 크게 보면 이방원이 군사를 일으켜 무능한 세자 이방석을 세자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왕권을 장악하여 조선을 올바르게 이끌 것이라는 명분을 세웠으나, 사실상 형제들끼리 차기 대권을 꿈꾸며 백성들이 보는 도성 한복판에서 골육상잔을 벌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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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왕자의 난은 1398년 무인년에 일어났다고 하여 무인정사라고도 불리며, 이방원이 주도하여 일으킨 난이라고 하여 '방원의 난'이라고도 한다.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신의왕후 한씨 소생의 왕자들이 신덕왕후 강 씨의 소생인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되자 불만을 품게 됨으로써 발생했다. 

 

출처. 태종 이방원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 역사서에서는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통해 고려의 정권을 장악하면서 쉽게 조선을 개국한 것처럼 기록이 매우 짧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고려 왕조 최후의 충신인 정몽주 등이 멸망을 막기 위해 저항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성계가 사냥 중 낙마하면서 큰 부상을 당하게 되는데 이때를 노려 그의 정치 기반이 되는 정도전, 권근 등이 탄핵되어 치명타를 입을뻔했다. 이러한 위기를 한 번에 극복한 것이 바로 이방원이었다. 

 

출처. 태종 이방원

 

이방원은 대업을 위해 정몽주는 반드시 제거해야할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아버지 이성계는 가능한 정몽주를 품고 싶어 했다. 판단은 이방원이 옳았다고 하지만 이성계의 입장에서 집안의 자랑이었던 이방원이 자신의 뜻을 어기고 괴물이 되어버린 모습에 크게 실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계는 평생 무인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콤플렉스가 있는데 바로 문인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런던 차에 이방원이 과거에 급제를 하다 보니 그야말로 집안의 보배로 총애를 받았다. 

 

출처. 태종 이방원

 

정몽주 사건 이후 두 부자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게 되고... 신덕왕후 강씨는 이 틈을 노려 자신의 아들을 세자에 책봉하도록 수를 쓴다. 권문세족 출신인 신덕왕후 강 씨는 정치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공이 없는 자신의 아들을 억지로 세자 자리에 올려놓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의왕후 한 씨의 소생들이 불만을 가지게 된다. 

 

출처. 태종 이방원

 

하지만 조선 개국 전 신의왕후 한씨가 사망하고... 신덕왕후 강 씨가 조선의 정비가 되었기 때문에 세자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는 부분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정도전을 비롯한 조정의 중신들을 탁월한 정치력으로 수완을 발휘해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신덕왕후가 국정농단을 했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결국 선택은 태조 이성계가 직접 내린 것이기 때문에 좀 애매한 부분이 있는 듯하다. 그 이전부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 씨의 소생들... 특히 이방원과의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적장자 상속에 의거하여 진안대군 이방우가 세자가 되어야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탈락했다. 그리고 왕자들이 모두 고려 왕족이나 명망 있는 가문과 결합이 되었기 때문에 정통성이 취약해질 수 있다.  

 

출처. 태종 이방원

 

아무튼 싱덕왕후 강 씨의 소생 중 첫째인 무안대군(무안군) 이방번은 '거만하고 경솔해 볼품이 없으므로 세자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하여 탈락.. 실제로는 이방번의 부인이 공양왕의 조카딸이라 절대로 세자에 올릴 수 없는 정치적인 명분으로 인해 결국 막내인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되었다.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된 후 신의왕후 한 씨 소생의 아들들은 큰 불만을 품었으나 대세가 기울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제는 태조 이성계 혹은 신덕왕후 강 씨가 신의왕후 한 씨 소생의 아들들을 경계하여 정치 일선에서 소외시켰으니 불만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출처. 태종 이방원

 

드라마에서는 이방원과 신덕왕후 강씨의 갈등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겉으로는 신의왕후 한 씨 소생의 자식들을 잘 챙겨주는 척하지만 태조에게는 끊임없이 경계를 할 것을 종용하는 등 거하게 뒤통수를 쳤다. 조선의 안녕보다는 일신의 안위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안정적인 정치를 하기 위해 정도전을 포섭하고, 이방원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출처. 태종 이방원

 

신덕왕후 강씨가강 씨가 의도한 것처럼 아들에게 거대한 권력을 물려주었으나 그것을 유지할 수가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신덕왕후 강 씨가 41세의 젊은 나이에 급성신부전증으로 급사하게 된다. 신덕왕후 강 씨가 사망하게 되자 태조 이성계 역시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결국 신덕왕후 강 씨의 죽음으로 숨죽이고 있던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이 점차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출처. 태종 이방원

 

이방원은 차분히 정계 복귀를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이 되어줄 민씨 집안, 이숙번, 하륜, 조영무 등을 포섭하여 군사를 동원하기 위한 준비도 함께 했다. 현재 드라마상 스토리는 명과의 외교 문제로 인해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계획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병 혁파를 시행한다는 명령이 내려온다. 

 

출처. 태종 이방원

 

중앙집권국가에서 사병은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이성계 역시 가별초 집단을 기반으로 세력을 쌓아왔다. 이방원과 형제들 역시 사병을 기반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되는데 사병 혁파는 왕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오죽하면 훗날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후 가장 먼저 한 정책이 바로 사병 혁파이다. 과연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1차 왕자의 난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진다. 우선, 결과적으로 1차 왕자의 난의 결과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인 세자 이방석이 살해된다. 그리고 정도전 일파가 제거되고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 영안군 이방과가 세자에 책봉된다. 그리고 2대 국왕인 정종이 되고 모든 실권은 이방원이 틀어지게 된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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