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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史:)조선시대40

태종 이방원의 장인 민제 여말선초 태종 이방원의 장인이자 원경왕후 민 씨의 아버지 민제라는 인물을 살펴보자. 고려 시대 여흥 사람으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면서 맑고 소박해 사치를 싫어했다고 알려졌다. 독서를 좋아해 1번만 읽어도 바로 기억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인물로 사위인 이방원 역시 민제에게 학문을 배웠다. 1357년(공민왕 7년)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직학에 임명되었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어 요직을 두루 임명되었다. 민제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 개국 이후이다. 이성계 집안과 사돈을 맺은 후 위화도 정벌 당시 그의 아들들이 볼모로 잡혀있었는데, 민제 집안 역시 경계를 받기도 했다. 고려가 멸망한 후 조선이 건국되자 7월에 자헌대부 예문춘추관 태학사에 임명되었다. 조선에서도 민제는 그 능력을 인정받.. 2022. 3. 13.
광해군과 영창대군 조선의 14대 국왕 선조는 아들들 중 광해군과 영창대군과 관련된 비운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선조가 국정을 다스리는 기간에 임진왜란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전쟁이 발발했다. 평화로운 시대를 유지하던 조선군은 전쟁 초기 속절없이 연패를 하면서 한양까지 왜군에게 빼앗겼다. 선조는 피난길에 올랐고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명나라로 도망갈 생각까지 했다. 전쟁 발발 후 빠른 판단 능력(?)으로 파천을 한 선조가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자 명나라에서는 조선이 자신들을 배신하고 일본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했다고 전해진다. 신하들의 반대로 명나라로의 망명은 무산되고, 명나라의 원군이 도착하자 평양성을 탈환하기 위해 왕실과 종묘사직에 대한 모든 권한을 세자였던 아들 광해군에게 넘겼다. 당시 왜군은 전국.. 2022. 3. 12.
박포의 난(+태종 이방원, 회안군 이방간, 2차 왕자의 난) 여말선초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2차 왕자의 난 혹은 박포의 난을 일으킨 박포에 대해 살펴보자. 고려말 박포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대장군에 봉해되고, 죽성군에 봉해졌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는 과정에서 장군으로 큰 공을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박포의 성격을 보면 참을성이 부족해 불만을 쉽게 토로했던 것으로 보인다. 1393년 세자 이방석의 세자빈이었던 현빈 유씨의 일을 함부로 논했다가 근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한, 이성계에게 국정을 잘못해 변고가 있었다고 직언을 하다가 죽주에 유배되었다. 1396년 황주의 수령이 되었고,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가담해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의 동정을 정탐하는 등 공을 세웠다. 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한 후 .. 2022. 3. 10.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아나키스트, 관동대지진, 영화, 아내, 죽음) ■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박열 열사에 대해 살펴보자. 박열은 독립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 언론인, 시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을 한 인물이다. 특히, 일본에서 관동대지진(간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속출함에 따라 민심과 사회질서가 무너졌다. 이에 일본 정부는 재난을 틈타 조선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결탁하여 방화와 폭탄 등 각종 테러와 강도짓을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일본인들의 분노를 조선인들에게 향하도록 조장하였다. 이 시기 박열은 '박열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22년 간 투옥한 후 출소했다. ■ 생애 박열은 지금의 경북 문경에서 박영수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상주시 함창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제2고등보.. 202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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