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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단심] 이태와 인종 이호의 관계(+가계도, 문정왕후)

by 알풀레드 2022.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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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일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드라마 '붉은 단심'의 중심인물인 조선 12대 국왕 이태에 대해 살펴보자. 이태는 선종의 적장자로 선종이 반정으로 국왕에 오른 후 실권 없는 국왕이 되어 공신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며 자라왔다. 특히, 선종의 아내이자 이태의 모친인 중전 신 씨가 반정공신에 의해 멸문당한 역적의 딸이었기 때문에 왕실에 대한 약점을 잡은 공신들이 권력을 독점하여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출처. 붉은 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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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단심은 절대적 군약신강 시대 선종의 적장자 이태가 조선의 12대 왕으로 즉위하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이 드라마는 픽션이지만 역사적으로 모티브가 된 인물들이 존재한다. 조선 11대 국왕 선종은 조선 역사상 최초의 반정(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을 폐위한 신하들에 의해 새 국왕으로 옹립된 중종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물론 픽션의 인물인 선종과 실존 인물인 중종의 성격을 살펴보면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볼 수 있다. 그 상황만 따온 것으로 보인다. 

 

출처. 붉은 단심

 

선종의 적장자 이태는 중종과 장경왕후의 맏아들로 태어난 인종 이호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인종 이호는 조선의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짧은 치세를 남긴 왕[재위기간: 1544년 11월 ~ 1545년 7월]으로 알려졌다. 그는 8개월 정도 남짓 왕위에 오른 후 원인 모를 병으로 드러누워 시름시름 앓다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함에 따라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조정이 혼란스러워 백성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출처. 붉은 단심

 

역사에는 IF가 없지만 만약 인종의 수명이 길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 이유는 인종 이호가 성군의 자질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기록상에  인종 이호는 지극한 효성과 너그러운 성품, 금욕적인 생활을 이어가며,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성품이 조용하고 효심이 깊으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3살 때부터 글을 읽을 정도로 총명했고, 1522년 여덟 살의 나이로 성균관에 들어가 매일 세 차례씩 글을 읽었다. 철저한 금욕 생활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도학 사상(성리학)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붉은 단심

 

하지만 이런 성품은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권력을 비정한 것으로 국왕은 신하들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적절한 모략이 필요하다. 그의 어진 성품은 계모 문정왕후를 견제하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면서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문정왕후는 여인천하라는 드라마를 본 시청자라면 어떤 인물인지 금세 파악이 가능하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한 여성으로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악독한 행동을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녀가 권력을 잡은 후 남동생 윤원형 등 소윤의 핵심인사를 기용하여 각종 사화를 일으켰다. 문정왕후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 선종의 계비이자 대비 최가연이다. 

 

출처. 붉은 단심

 

다시 돌아가 인종 이호는 생모 장경왕후 윤씨가 죽은 후 문정왕후 윤 씨의 손에서 자랐다. 문정왕후가 경원대군을 낳기 전까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호에게 매우 자상한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경빈 박 씨가 자신의 아들 복성군을 내세워 세자에게 도전하자 정치적인 동지로서 세자를 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정왕후가 경원대군을 낳게 되자 상황이 급변하였다. 

 

출처. 붉은 단심

 

야사에 따르면 세자궁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하였다. 문정왕후 윤씨가 세자궁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이에 세자이호는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빈궁을 깨워 대피시킨 후 스스로 불에 타 죽기를 기다렸다. 계모인 문정왕후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을 알아채고,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그에 따르는 것이 효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 중종이 나타나 세자를 애타게 부르자 어머니에게 효가 되지만 아버지에게 불효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밖으로 나왔다고 전해진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도 동궁의 화재가 기록되어 있으며,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했기 때문에 야사로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온 것으로 보인다. 

 

출처. 붉은 단심

 

중종이 승하한 후 세자 이호는 왕위를 계승한다. 그의 나이 30세로 학문을 좋아하는 성격을 반영하듯 유학에 바탕을 둔 정치를 펼치려고 노력했다. 우선, 조광조를 비롯한 기묘사화 때 피해를 입은 사림 세력들의 신원하고 현량과도 복구하였으며, 사림 세력들을 중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인종의 몸이 유약했다고 하며 문정왕후의 압박이 상상 이상이었다고 한다. 

 

출처. 붉은 단심

 

문정왕후는 인종에게 공공연하게 자신과 경원대군을 언제 죽일 것이냐며 막말을 하였다. 인종과 문정왕후의 관계는 야사에서 많은 기록이 남아있는데, 인정이 죽기전 문정왕후가 준 떡을 받아먹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물론 독살과 관련된 이야기는 허황된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제 인종은 음식과 약을 먹는 것을 꺼려했다고 하는데, 독살에 대한 불안감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붉은 단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원대한 포부를 펼치지 못한 인종이었기에 문정왕후와의 관계가 부각된다. 인종은 본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중종이 병에 걸렸을 때 무리하게 간호를 했다고 전해지며, 즉위 후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사나 사실 접대 등 국왕의 업무를 무리하게 하다가 몸이 축나 과로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오죽하면 신하들은 인종이 고기를 먹지 않아 문정왕후에게 고기를 먹도록 권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고기를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붉은 단심

 

이렇게 치세 기간이 짧은 왕이었기 때문에 붉은 단심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종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자식 없이 두 명의 부인을 두었다고 한다. 인성왕후 박 씨와 귀인 정 씨 두 명의 부인을 두었다. 

 

인종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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