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일본史:)에도시대

신선조와 이케다야 사건

by 알풀레드 2022. 7. 17.
반응형

일본에도 시대 후기 1864년 7월 8일 교토의 산조 기야마치에 있는 이케다야라는 여관에서 역사를 흔들만한 사건이 발생한다. 조슈 번과 도사 번의 존황양이 지사들이 아이즈 번의 다이묘이자 교토수호직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를 암살하고 고메이 덴노를 하기로 납치하려고 모의하였다. 존황양이 지사들은 이케다야에 모여 회합을 가졌다. 이 사실을 미리 인지한 교토 치안 유지 조직인 신선조는 이케다야를 급습하여, 수많은 존황양이 지사들을 살해하거나 체포하였다. 이케다야 사건으로 신선조라는 조직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고, 막부로부터 공식적인 지위와 지원을 받게 된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반응형

 

신선조는 동란의 시기 짧은 기간동안 교토를 중심으로 치안 유지 활동을 한 무사 조직이다. 어쩌면 역사적으로 쉽게 잊혀버렸을지도 모르는 조직이지만 소설과 드라마 등 각종 매체의 영향으로 최후의 무사 집단이라는 이미지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신선조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이케다야 사건이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이케다야 사건의 발단은 1863년 8월 18일의 정변으로 조슈 번은 사쓰마 번과 아이즈 번에 의해 교토에서 추방되었다. 당시 조슈 번은 천황의 뜻을 받들어 서양 열강을 물리치자는 존황양이를 주장하였고, 아이즈 번과 사쓰마 번은 공무합체(조정과 막부의 의견 차이를 좁혀 충돌을 피하자는 내용)를 지지했다. 조정에서 실각한 조슈 번에서 강경파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출처. 바람의 검심

 

5월 하순 신선조에서 감찰을 맡고 있는 야마자키 스스무와 시마다 가이 등은 고바시우에루신 정에서 땔감 장사를 하는 마스야 기에몬의 존재를 파악하게 된다. 신선조는 마스야를 탐문한 결과 조슈 번과 불온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과 각종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또한, 마스야 기에몬의 본명은 후루타카 슌타로라는 사실도 함께 확인하였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슌타로는 즉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신선조는 슌타로를 상대로 가혹한 고문으로 다음과 같은 자백을 받아내었다. 8월 18일 정변 후 교토에서 쫓겨난 조슈 번의 낭인들은 6월 하순(기온마쓰리 축제 전날) 강풍이 불어올 때 교토에 불을 질러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를 암살한 후 덴노를 납치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곤도 이사미와 히지카타 토시죠 등 신선조 대원을 집결시키고 즉시 교토 탐문을 시작한다. 신선조 국장 곤도 이사미는 정예 대원 5~7명을 데리고 이케다야 여관을 급습한다.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는 더 많은 인원을 데리고 교토 거리를 탐문하였으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이케다야에 도착했다고 한다. 곤도 이사미는 1번대 조장 오키타 소지, 2번대 조장 나가쿠라 신파치, 8번대 대장 도도 헤이스케 등 핵심 대원들과 함께 이케다야에서 낭인들과 혈투를 벌였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이케다야에는 미야베 테조 등 약 20여 명의 과격 존황양이파 사무라이가 모여있었다고 한다. 일본 여관 특성상 통로가 좁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이었던 신선조가 포위되지 않고 전투를 벌일 수 있었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이 승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위기의 순간 히지카타 토시조의 지원군이 도착함에 따라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다. 히지카타 토시조가 도착하기 전 수많은 존황양이파 사무라이를 베었다고 한다. 이때 토도 헤이스케가 부상을 당했고, 1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는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각종 매체에서는 1번대 조장 오키타 소지가 폐결핵으로 각혈하는 장면을 반드시 결정적인 장면으로 연출하기도 한다. 사실 오키타 소지는 이케다야 사건 전부터 폐결핵을 앓아온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교토 거리가 불바다가 될뻔한 것을 신선조가 막아내었다.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해 승리를 거둔 신선조의 이름은 천하에 알려졌다. 반면,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갈 핵심 인재들이 사망함에 따라 메이지 유신이 1년 정도 늦춰졌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다만 이케다야 사건이 메이지 유신을 이루는데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함께 존재한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반응형
그리드형(광고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