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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본史:)에도시대

신선조 2번대 조장 나가쿠라 신파치(+바람의 검심, 용비검)

by 알풀레드 2023.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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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 홋카이도 편에서는 에도 말기 최후의 검객 집단이었던 신선조의 인물들에 대해 소개되었다. 본편에서 히무라 켄신이 이케다야 사건을 소개한 때 신선조에 대해 언급하였고, 특히 1번대, 2번대, 3번대 조장이 무척이나 강했다고 말한다. 세타 소지로는 신선조 1번대 조장 오키타 소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이고, 3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는 실존 인물을 그대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었던 2번대 조장 나가쿠라 신파치는 홋카이도 편에 등장하였다. 물론 메이지 유신 이후의 배경을 가지고 있어 중년의 사내로 등장한다. 

 

출처. 오타루 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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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쿠라 신파치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마츠마에 번사 출신의 탈번 낭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콘도 이사미가 시에이칸을 상속받아 운영할 때 친분을 맺어 식객이 되었다. 그렇기 훗날 신선조가 창설될 때 창립멤버가 되어 큰 활약 하였다. 다만, 훗날 창립 멤버 간의 불화와 곤도 이사미 등이 신선조를 사유화하려는 모습에 실망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도바 후시미 전투 후 신선조를 이탈한다. 

 

출처. 바람의검심, 홋카이도편

 

나가쿠라 신파치는 신도무념류 면허개전으로 신선조 3대 검객 중 한명이다. 일반적으로 신선조 최강의 무사는 오키타 소지라고 알려져 있으며, 사이토 하지메와 나가쿠라 신파치의 실력은 오키타 소지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신선조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한 결과, 아베 쥬로는 검술실력은 나가쿠라 신파치, 오키타 소지, 사이토 하지메 순으로 평했다고 한다. 신파치는 용비검이라고 하는 기술을 실전에서 사용했는데, 하단 자세에서 위로 상대방의 검을 튕겨 올리면서 아래로 베는 기술로 알려져 있다. 

 

출처. 바람의검심, 홋카이도편

 

나가쿠라 신파치는 이케다야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곤도 이사미, 오키타 소지, 도도 헤이스케 등과 함께 소수의 정예로 수십명의 존왕파 지사들이 있었던 이케다야로 쳐들어가 격렬한 전투가 진행되었다. 이때 나가쿠라 신파치는 자신의 용맹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거두었다. 

 

출처. 타올라라 검

 

신선조가 창설될 무렵 곤도 이사미는 시에이칸 동료들과 한 마음으로 양이를 위해 뭉쳤다. 이때는 순수한 마음으로 쇼군을 지키기 위해 다마에서 상경해 불량 낭인들을 단속하고, 체포하는 등 활약했다. 공적이 올라갈수록 곤도 이사미는 초심을 잃고 함께 했던 동료들을 부하나 가신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나가쿠라 신파치는 이에 반발하여 지휘계통을 무시한 채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에게 직접 호소하였다. 

 

출처. 바람의 검 신선조(드라마)

 

이런 행동은 신선조 내부적으로 항명을 한 중대한 사건으로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어 곤도 이사미 등은 골머리를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 생기면 암살로 마무리를 했던 신선조에서 나가쿠라 신파치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아마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에게 호소를 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상당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출처. 신선조 혈풍록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삿초동맹이 맺어지면서 막부군은 점차 수세에 몰리게 된다. 그리고 막부군과 신선조는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나가쿠라 신파치는 결사대를 모집해 칼 한자루를 들고 적중을 돌파하는 용맹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패배로 인해 신선조는 갑양진무대로 개편되었고, 나가쿠라 신파치는 신선조를 이탈한다. 이탈한 이유에서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지만 대체로 곤도 이사미와의 불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바람의 검 신선조(영화)

 

신선조와 결별한 후 세이에이타이를 결성해 간토 북부에서 항전 하는 등 막부군을 위해 끝까지 싸웠다. 하지만 결국 막부군이 항복함에 따라 마츠마에 번의 번사로 복귀하였고, 결혼을 하는 등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스기무라 요시에로 개명한 후 새롭게 변화한 시대에 적응하여 전사한 신선조 동료들의 삶을 짊어진 채 살아간다. 특히, 낭사문구보국기사라는 일기를 써서 신선조와 관련된 기록을 남겼는데, 후대 신선조의 활동을 알게 되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았다. 

 

출처. 타올라라 검

 

나이가 든 후에도 실력이 녹슬지 않았는지 형무소의 검술 사범을 맡아 간수들에게 검술 지도를 했다고 하며, 검술 도장을 열기도 했다. 청일 전쟁 당시 발도대에 지원하였으나 신선조였던 이에게 힘을 빌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

 

1915년 1월 5일 충치로 인해 오타루에서 사망한다. 죽음을 앞두고 곤도나 히지카타보다 높은 곳에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며, 그 이유는 죽어서도 그들을 지키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비록 불화가 있었으나 끈끈했던 동료애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바람의 검 신선조(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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