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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방원19

태종 이방원 신문고 설치 1401년 태종 이방원이 조선의 3대 국왕으로 등극한 후 대궐 밖 문루에 청원과 상소를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다. 신문고를 설치한 취지는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직접 해결하여 줄 목적으로 북이 울리는 소리를 임금이 직접 듣고 북을 친 자의 억울한 사정을 접수하도록 했다. 신문고를 치기 전 서울에서 주장관 지방에서는 관찰사에게 직접 신고하여 사혼부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였고, 해결이 되지 않았을 때 신문고를 직접 울리도록 했다. 다만, 신문고를 울리는 절차는 매우 복잡했다고 한다. 다만, 백성의 고충을 왕이 직접 듣는다는 취지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임금은 한 나라의 지존이기 때문이다. 신문고에서 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사안은 종사에 관련된 억울한 사정이나 목숨에 관계되는 범죄, 누명 및 자기에.. 2022. 3. 15.
태종 이방원의 장인 민제 여말선초 태종 이방원의 장인이자 원경왕후 민 씨의 아버지 민제라는 인물을 살펴보자. 고려 시대 여흥 사람으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면서 맑고 소박해 사치를 싫어했다고 알려졌다. 독서를 좋아해 1번만 읽어도 바로 기억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인물로 사위인 이방원 역시 민제에게 학문을 배웠다. 1357년(공민왕 7년)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직학에 임명되었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어 요직을 두루 임명되었다. 민제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 개국 이후이다. 이성계 집안과 사돈을 맺은 후 위화도 정벌 당시 그의 아들들이 볼모로 잡혀있었는데, 민제 집안 역시 경계를 받기도 했다. 고려가 멸망한 후 조선이 건국되자 7월에 자헌대부 예문춘추관 태학사에 임명되었다. 조선에서도 민제는 그 능력을 인정받.. 2022. 3. 13.
박포의 난(+태종 이방원, 회안군 이방간, 2차 왕자의 난) 여말선초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2차 왕자의 난 혹은 박포의 난을 일으킨 박포에 대해 살펴보자. 고려말 박포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대장군에 봉해되고, 죽성군에 봉해졌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는 과정에서 장군으로 큰 공을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박포의 성격을 보면 참을성이 부족해 불만을 쉽게 토로했던 것으로 보인다. 1393년 세자 이방석의 세자빈이었던 현빈 유씨의 일을 함부로 논했다가 근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한, 이성계에게 국정을 잘못해 변고가 있었다고 직언을 하다가 죽주에 유배되었다. 1396년 황주의 수령이 되었고,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가담해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의 동정을 정탐하는 등 공을 세웠다. 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한 후 .. 2022. 3. 10.
1차 왕자의 난 KBS 인기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조선 전기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묘사되는 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 혹은 이방원의 난이 일어날 것을 예고했다. 왕자의 난은 찰리 체플린의 말과 같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참 어울린다. 크게 보면 이방원이 군사를 일으켜 무능한 세자 이방석을 세자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왕권을 장악하여 조선을 올바르게 이끌 것이라는 명분을 세웠으나, 사실상 형제들끼리 차기 대권을 꿈꾸며 백성들이 보는 도성 한복판에서 골육상잔을 벌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1차 왕자의 난은 1398년 무인년에 일어났다고 하여 무인정사라고도 불리며, 이방원이 주도하여 일으킨 난이라고 하여 '방원의 난'이라고도 한다.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신의왕후 ..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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